지방자치 그리고 잔설(殘雪)
지방자치 그리고 잔설(殘雪)
  • 뉴스서천
  • 승인 2002.03.07 00:00
  • 호수 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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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는 ‘서풍의 노래’ 마지막 구절에서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라고 읊어 속박에서 벗어나야 할 인류에 희망과 꿈·자유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우리 또한 질곡의 한 시절을 마감하고 지방자치라는 ‘민주의 바람’을 맞이한 지 어언 3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입춘이 지나고 스치는 바람사이로 조근조근 봄소식이 들리는가 싶더니 산정에 오르니 후미진 산자락엔 아직도 잔설(殘雪)이 그득하다.
광역단체장·광역의원·기초단체장·기초의원 등 모두 4천4백28명을 뽑는 지방자치 선거를 3개월여 앞둔 요즈음 시정(市井)에는 자천타천 얼굴 알리기·이름 내밀기가 극성, 너무 민망스럽고 역겨웁다.
한 조사를 보면 기초단체장 경쟁률이 대부분 지역에서 5대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서천은 6대1이 넘을 것으로 점쳐져 단체장 후보로 거명되지 않으면 팔불출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쯤 되니 일부 정당은 정당공천제로 인한 특별헌금 등 불미스런 일을 미연에 차단한다는 명목에서 유권자를 참여시킨 ‘후보 자유경선제’를 채택, 상향식 공천방식을 취한다고 하나 정당지역구 위원장이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여 반사이익을 노릴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정치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던 인사들이 다시 복귀하는 속셈도 쉽게 짐작할만한 일이다.
지방선거 관련 법 위반건수가 2기의 같은 기간보다 무려 5배나 증가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중앙선관위의 자료에 의하면 2천2백75건이나 적발되었다고 한다(2월14일 현재). 충남지역 선관위에 적발된 위반건수만 해도 지난해 12월 11건이었던 것이 올 들어 한달만에 35건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는 시행될수록 개선되고 안정되어 정착되어 가는 것이 상궤인데도 불구하고 불법·위법의 사례가 더욱 활개를 치는 것은 곧 지방자치제도 그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그 수법도 상대후보의 흠집내기에서부터 신년회·동창회 등을 이용한 금품·향응 제공,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개인 홍보, 여론조사를 내세워 출마예상자를 헐뜯고 특정인의 업적을 부각, 지역신문에 새해 인사 광고 및 인터뷰기사 게재, 등산객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특정인 추켜세우는 여론 띄우기 등 다양하고 지능적이다.
어느 정당 지구당에선 자체 경선 투표권을 당비를 납부한 당원에게만 주기로 하자 일부 후보자들이 자기 돈으로 당비를 대신 내주며 자기편 사람을 무더기로 입당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져 후보 경선제의 공정성여부도 미지수로 남게 되었으며 천안시에선 모 노인회 회장이 시의원 입후보예정자에게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했다가 선관위에 적발되는 등 이 같은 탈·불법의 사례가 도처에 그득하다.
또 지방의원 선거의 경우 대부분 현역의원이 재출마할 것이 예상되며 단체장의 경우도 3연임이 법적으로 보장된 관계로 현역이 또다시 출사표를 던질 확률이 높아지고 있으며 여기에 팔불출을 면해 보려는 영웅심에서 조직폭력배·무뢰한·선거 철새꾼까지 가세,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후보자 난립현상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경남의 어느 지방에서는 시의원이 차기 선거를 의식, 공식회의 석상에서 칼을 휘두르며 공무원을 질책·협박함으로써 인기를 얻어보려는 수준이하의 행동까지 하여 쓴웃음을 짓게 한 일이 있다.
서천군의 경우 군내 13개 읍·면지역에서 선출된 13명의원의 후반기 의정활동이 극히 저조, 2년 간 군정질의 3회 미만이 3명이며 6∼9차례정도 질의한 의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도 중복되거나 형식적인 내용이 많아 기초의원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있었다(뉴스서천 2월21일자 보도).
이 시점에서 유권자는 주민이해가 엇갈린 사안에 소신을 저버린 채 적당히 영합 내지는 기만한 사실이 없는지, 소수의 민원을 외면하고 뒷문 출입을 일삼는 처신은 안 했는지, 지역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무리한 사업을 벌여 주민의 피해를 입힌 사실은 없는지 등을 살피고 진정한 주민의 대표로 인격과 덕망은 갖춰져 있는지, 군 발전을 위한 확실한 청사진을 갖추고 있으며 참신하고 신념이 확고한지 등 정치적·행정적 및 경영적 차원의 능력 검증을 꼼꼼히 점검해봐야 할 차례이다.
이러한 점검을 통해서만이 타락과 혼탁의 선거분위기를 일신하는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며 불법·위법의 풍토가 사라질 때 후미진 산자락의 잔설은 잦아들고 희망과 꿈·자유·민주의 싹이 솟아나게 될 것이다.
<김지용/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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