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직 기자의 필리핀 연수기
이원직 기자의 필리핀 연수기
  • 이원직
  • 승인 2002.09.12 00:00
  • 호수 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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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나라가 제일 좋더라”
충남대학교 농과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을 배우면서 7월15일부터 7월18일까지 3박4일 동안 필리핀을 관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필리핀이라는 다른 나라의 문명을 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출발. 항공기에 몸을 싣고 4시간쯤 갔을까? 예상과 달리 필리핀 공항은 나에게 너무 일찍 다가왔다. 하지만 기대감도 잠시,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달리 필리핀은 공항에서부터 조금씩 실망감으로 다가왔다. 필리핀이 우리나라에 비해 30년 정도 떨어진 나라로 알고는 갔지만 공항에서부터 우리 대한민국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부의 격차만으로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한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과 함께 이국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또다시 나를 자극해 오고 있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우리 모두는 피곤함도 잊은 채 필리핀 문화를 접하기 위해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고 다음날 역시 우리는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탄 채 필리핀 문화탐사를 위해 바쁜 일정을 보내야만 했다.
차를 타고 다니는 동안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도로는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고 시내를 벗어나자 그 옛날 우리나라 50년 전에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오두막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한 쪽으로는 좋은 집, 좋은 빌딩들이 많았지만 또 한 쪽으로는 정말 눈뜨고는 볼 수 없는 그런 판자집들이 공존하는 나라, 필리핀은 한 눈에 보아도 빈부의 격차가 무척 심한 나라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차창 사이로 비쳐지는 농가들의 모습은 너무나 처량했다. 농가에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논에는 병충해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풀 반 벼 반일 정도로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있었다. 그 뿐인가. 아이들은 놀이터가 없어 흙투성이 인 채로 길가에서 놀고 있었고 집들은 곧 무너질 것만 같 았다.
나는 농촌의 이런 모습들을 보며 잠시 필리핀의 국민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절경이 뛰어나고 수도작을 일년에 3번 할 만큼 자연환경이 좋은 나라인데 혹시 게으름으로 인해 가난을 자초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
하지만 돈으로 행복의 수치를 바로 잴 수 없듯이 필리핀 국민들은 혹시 너무 낙천적이거나 현실에 연연하지 않는 느긋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3백5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필리핀. 그러나 그 오랜 세월 동안에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애국자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 문득 필리핀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호세’가 생각났다. 죽는 그 날까지 스페인에게 무릎을 꿇기가 싫어서 뒤로 한 채 총을 맞고 죽어갔다는 호세의 후세들이 살아가는 필리핀의 민족성은 결코 우리가 우습게 볼 수 없는 또 다른 저력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필리핀을 돌아다니는 동안 내내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3백50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아왔던 필리핀과 36년 동안 일제 식민지 억압을 받아 왔던 우리나라가 비슷한 점이 있었다면 천혜의 농경자원을 지니면서도 이를 활용하는 노력에 있어서는 필리핀 보다 우리나라 농민이 더 노력을 많이 하고 뛰어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새삼 우리나라의 농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해외연수를 갔다오면서 나는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좋은 나라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새겨보면서 천혜의 땅 대한민국을 외쳐본다.
“우리나라가 제일 좋더라, 대한민국 농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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