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놀라운 일이다. 과연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92.9%가 천성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결정 자체가 너무나 졸속적이다. 제도를 새로이 만들어 한번을 실시해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한번 해보고 여론조사를 해서 그것을 뒤집었다.
여론조사란 그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 내용도 내신과 선발고사를 병행하는 것에 대해 92%가 찬성하였다고 했는데, 이번 교육청의 결정은 명목상 병행 실시일 뿐 사실상 선발고사 체제로 되돌아 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이미 관료들의 특정한 의도에 의해 구색 맞추기 식의 여론조사를 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도 정말 심각한 것은 제도상의 문제점이다. 무시험내신제도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입시교육의 폐해에 대한 오랜 숙고 속에서 교육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되었던 제도다. 입시제도 하에 그간의 학교교육은 오직 파행 그 자체였다. 수업은 시험문제 풀어주는 시간이었고, 오직 주어진 몇 가지 유형의 문제를 달달 외우는 것이 공부의 전부였다. 그것은 정상적인 공부가 아니었다. 공부라 함은 단지 주어진 몇몇 지식의 단편을 외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더 폭넓은 것이다. 그것을 지식에 한정해서 말한다 해도, 단순히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식을 검토하며, 비판해내고 스스로 지식을 생산해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잘 모르시는 분은 무시험제도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제대로 된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성적을 가지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요즈음 학교성적은 한번 시험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습수행능력을 평가하여 결정하도록 되어있다. 말하자면 종합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3년 내내 평가하는 것보다 하루 보는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는가?
또한 무시험 내신제도는 도시와 농촌간의 학력격차를 줄일 수 있는 아주 좋은 제도이다. 선발고사를 보면 고급과외와 학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유리하지만, 내신제도를 통해서 선발을 하면 학교공부에 충실하면 되니까 그것에 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교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점차 교사들도 참고서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창의적으로 교육과정을 개발해나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참고서의존도가 낮아지고 있으며, 그래서 참고서업계들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던 터였다. 그야말로 교육이 정상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물론 아직 대학의 학력고사가 남아있어 입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앞으로 자꾸 개선을 해나갈 문제였지, 그렇다고 이제 바로 실험을 시작한 내신제도를 하루아침에 뒤집을 일은 아니었다.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아야 하는 교육정책이 어떤 관점에서 추진하느냐의 문제이지 여론이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뒤집을 일은 아닌 것이다. 만일 그런 식으로 교육정책을 한다면 내년의 여론이 바뀌면 다시 내년에 입시제도를 뒤집겠는가 말이다.
물론 제도가 바뀌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었을 것이며, 만일 부작용이 있다면 부분적인 보안을 위한 노력을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 한번 없었다. 참으로 한심스런 백년지대계다.
<김인규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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