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함께 숨쉬는 목회자가 되고파”
비인 장포리 입구에서 보면 바닷가 옆 솔밭을 벌목한 곳에 5백평 넘는 밭이 흉물스럽게 비닐하우스 골조만 남아있다.그곳은 몇 해 전까지 천규태씨(43·사진)가 자식을 키우듯 하우스 채소와 느타리버섯을 기르던 곳.
지금은 집을 비롯해 밭까지 남의 손에 넘기고 마서면 한성리로 이사를 왔다.
천씨는 어려서부터 농사가 좋았고 고등학교도 장항공고 농업기계과를 졸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농업을 하게 됐다.
10년 전 천씨는 40평 남짓한 밭에 느타리버섯 재배를 시작한 후 비인농협 산하에서 1천5백만원을 융자받아 시설투자를 하며 채소작물 위주인 고추, 토마토, 배추 등으로 농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천씨는 4-H회에서 시설교육을 받으며 농민회 활동을 통해 농업에 전진함으로써 좋은 농수산물을 생산.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물건을 팔았고 어느 정도 번창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유통체제의 문제와 IMF는 천씨에게 재앙으로 다가와 가격의 폭락을 가져옴으로써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한마디로 농가부도를 맞았다.
천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은 일을 전전했고 괴로운 나날 속에서 자연스럽게 교회에 찾아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지금은 목사가 되기 위해 보령에 있는 대한신학교에 다니는데 올해 졸업반이다.
부인 송은주(35)씨는 천씨의 옆에서 묵묵히 버팀목이된 장본인으로 재작년에 장기기증을 할 만큼 타인에 대한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아직도 밭을 보면 가슴속에서 농업에 대한 열정이 끓어 오른다”는 천씨는 농업에 대한 미련이 많아 얼마전 이사온 곳에서 버섯재배사로 일할 계획이다.
농업을 사랑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한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천씨는 “정부가 사업을 지원하고 가격을 책임지지 못하는 농업정책을 펴 자신은 비록 실패를 보고 목회자로의 길로 들어섰지만 농업과 농업인의 미래를 위해 대책이 요구된다”고했다.
또 “농민회를 10년간 활동했던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는 천씨는 농업책임제도가 하루 빨리 정착되어 농업인들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며 살기를 빈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잘 알기에 이 보이지 않는 전쟁속에서 다시금 껍질을 깨고 농업인과 함께 숨쉬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천씨의 모습에서 우리고장 농업의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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