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처진 아이들 어깨에 손을…
축~ 처진 아이들 어깨에 손을…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0.05.20 09:51
  • 호수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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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의 수 / 서천고등학교 교사

오늘도 아이들과 같이 걸어서 교문에 들어섭니다. 아침마다 보고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축 처진 어깨에 가방은 왜 이리 무거워 보이는지…….

또한 등굣길 언덕은 왜 이리 오르막인지……. 아이들은 하나 둘 학교란 거대한 건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빨려 들어갑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인문계 고등학교입니다. 우리 아이들 모두 대학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 관계이지요.

아이들 표정이 밝지 않음은 우리 경기와 닮은꼴입니다. 수도권의 좋은 대학, 전망 있는 학교를 졸업해도 정규직으로 취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지요.

며칠 전 지방 국립대에 다니는 한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벌써 졸업해야 했는데 아직도 졸업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휴학한 이유가 취업하기 힘들어서라나요.

4학년 한 학기만 마치고 휴학하여,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중이라며 아침 일찍 나와 밤 12시가 넘어까지 공부 중이라 했습니다. 왜 그래야만 하냐고 물었더니, 토익점수를 높여야 하고, 전공 관련 자격증 몇 개라도 더 따 놓아야 졸업 후 취업할 때 그나마 안심이 된다는 것이라나요. 아무튼 그 제자에게 힘내라는 격려밖에 다른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기가 풀어지지 않고 남북관계마저 얼어붙고 있으니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 것이고 한정된 자원도 부족하다보니, 4년제 정규대학을 졸업하는 우리 제자들의 앞날은 더욱 어둡기만 합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제가 느끼기에도 그러하니 본인들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어른들 말씀에 ‘제 살 몫은 타고난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어쨌든 굶기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말도 옛말이 되었고, 요즘 부모들 마음은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과, 전망 밝은 학과의 대학에 들어가길 바라며 아이들을 다그칩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보면 부모님들보다 더 많이 더욱 비정하게, 지난번 모의고사 성적과 비교하며 보이지 않는 채찍질을 해댑니다. 대부분 많은 아이들이 이런 가르침에 잘 따르고는 있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그것으로도 안심되지 않아 밤 12시까지 학원에 과외에, 그리고 새벽까지 자신이 세운 목표에 도달하고자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지속될수록 아이들의 소년기 청년기 삶은 더욱 팍팍하고 고되기만 합니다. 그런 속에서도 아이들은 어쨌거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의 룰(규칙)이 아닌가 합니다. 항간에서는 대학입시의 3불정책(고교평준화 유지, 본고사 폐지, 기여입학제 금지)마저도 없앤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사고, 특성화고, 자립형사립고, 마이스터고 등으로 고교평준화도 절반은 무너졌다고 보입니다. 대학의 본고사 폐지도 논술고사와 각종 심층면접으로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지요.

마지막으로 남은 ‘기여입학제’도 돈 많은 수도권의 기득권층에 의해 도입하겠다는 말을 슬금슬금 언론에 흘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의 능력에 따라 인기대학 인기학과의 당락여부가 결정되니, 작년의 K대학에서도 우리나라 고등학교를 등급화하여, 강남의 특정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해 합격시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는데,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공정한 대학 입시의 룰을 어찌하면 고무줄처럼 늘여볼까라는 궁리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교육제도 속에서 창의적 인재를 기르고, 정명훈, 백남준과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가 탄생하리란 기대는 아예 하지 말아야 하는지 교사인 저도 서글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현관 앞 콘크리트 계단을 힘차게 밟고 올라갑니다. 시멘트 틈 사이로 민들레가 가늘게 노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참으로 척박한, 수많은 학생들이 발 딛고 다니는 시멘트 계단 사이로 얼굴 내민 민들레가 대견스럽고 밝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풀리지 않는다 해도,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아이들은 미래 우리 사회의 희망입니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기둥입니다. 자녀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오늘도 공부하느라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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