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해바라기
조선일보는 해바라기
  • 뉴스서천
  • 승인 2002.11.14 00:00
  • 호수 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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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대 선배 되시는 어느 친지 분이 “내가 조선일보를 40년 이상 읽어온 독자인데 요즘 조선일보의 논조가 영 틀렸어, 너무 편파적이고 해도 너무해. 이젠 그만 보아야 되겠어” 하고 토로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집도 할아버지 아버지 대에 걸쳐 30년 이상 조선일보를 구독했으니 조선일보와 무척 인연이 깊었던 셈이다. 그러나 내가 사회현상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서 조선일보가 일제하에 친일 여론을 조성하는데 앞장섰고 현대사의 암흑기인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부에 아첨하여 오늘의 언론재벌로 성장한 사실을 알았고 그 후 완고한 아버지를 설득하여 조선일보를 집 앞에 놓고 가지 못하게 하였다.
내가 객지에서 일곱번 이사를 다니는 동안 그때마다 조선일보를 거절하였다.
‘한일합방은 조선의 행복이요, 이봉창의 의거를 일본천황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일제징용과 정신대를 어서 가라고 독려했던 조선일보, 우리민족이 시련의 시련을 겪을 때마다 그 압제자의 편에 서서 민족의 아픔을 가중시켰던 조선일보.
민족의 피를 받아 이 땅에 살아가는 한 어찌 조선일보를 이른 새벽 문간 앞에 놓고 가게 하겠는가?
조선일보 바로 보기는 역사와의 전쟁이다.
조선일보라고 신문의 정도가 무엇인지 모를 리 있었겠는가? 하지만, 역사 앞에서 바른길을 걷자니 춥고 배고픈 가시밭길이요 강자에 아첨하여 시류에 편승하면 따뜻하고 배부르고 기름진 길이기에 조선일보는 일관성 있게 후자의 기름진 길만을 택했던 것이다.
어느 날, 조선일보로 먹고사는 어느 친구가 “신문 공짜로 넣어 줄테니 제발 좀 읽어봐, 부끄러운 과거사를 들추어 지금 잘 나가는 조선일보를 어떻게 하자는 거야?” 하면서 구독을 권유했다.
그렇다면 과거사는 잠시 접어두고 요즘 조선일보의 행태는 어떤가 보자. 특정정파를 노골적으로 편들어 주는 줄서기식 보도는 언론의 공정성을 논하기에 앞서 재벌언론의 횡포와 방자함이 극치에 달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마치 독재시절 서울 신문을 연상케 한다. 언제나 기름진 길만 택했던 조선일보의 행보로 보아 당연한 귀결일지는 모르지만 국내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한다는 신문이 오늘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한국신문의 앞날이 참으로 암담하다.
이런 위기감에서 대학 교수들의 조선일보 칼럼 거부 운동이 전개되고 언론학 교수단, 각종시민 단체 등은 조선일보 안 보기 운동을 벌이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의 논조는 남북관계에도 잘 나타난다. 이미 퇴조해버린 냉전이데올로기를 붙들고 앉아 남북의 갈등을 은근하게 조장하려 한다.
요즘 퍼주기식 대북 정책이란 말도 조선일보에서 띄운 것이 아닌가. 남아도는 쌀 굶어 죽어 가는 북한 동포에게 좀 주면 안되나?
조선일보여! 그대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허리가 잘린 채 신음하는 분단의 역사가 그렇게도 고소하단 말인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은 겉으로는 평화통일을 말하지만 남북 분단을 유지시켜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냉엄한 동북아시아의 현실을 조선일보는 몰라서 그러는가.
조선일보는 이젠 친일 원죄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역사 앞에 사죄하고 이제라도 정론을 펴야 할 것이다. 훗날 남북이 통일되었을 때 일제시대에 항일 민족지였다고 지금 거짓증언하고 있듯이 그때 가서 우리가 민족통일의 기수였다고 또다시 민족 앞에 거짓증언 할 셈인가.
요즘 대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 지식인 기업인들이 줄서기에 바쁘다.
일관성 있게 기름진 길만 추구하는 조선일보적 행태를 보는 것 같아 착잡하다.
눈 내리는 계절이 다가온다. 서산대사의 선시를 떠올려 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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