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공정사회
그들만의 공정사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0.10.11 13:25
  • 호수 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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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병 상 / 칼럼위원

한때 정의롭지 않게 권력을 틀어쥔 이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대다수 시민의 의식과 행동을 성가시게한 적 있다. 정의롭지 못한 이가 이끄는 권부는 결국 물러날 때까지 정의롭지 않았고, 그 권력에 해바라기처럼 아부했던 인사들도 정의롭지 않았으며 그 여파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진다.

공자는 ‘정명’을 말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바를 수 없고, 말이 바르지 않으면 일이 바를 수 없다는 공자의 지적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진리다.

기초지방자치부터 대통령까지, 그럴싸한 구호를 붙인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이 정부”라고 하다 후반기 “혁신사회”를 주창하자 정부 조직은 일사분란하게 “혁신사회 실현”을 부르짖었고 펼치려는 사업마다 혁신사회를 위한다고 정당화했다.

현 정권은 어떤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구한다더니 임기가 절반을 넘어간 순간 “공정사회”를 주창한다. 언뜻 가슴을 설레게 하는 구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저탄소로 무슨 성장이 어떻게 추구했는지 대다수 시민들은 아직 납득하지 못한다. 치명적인 폐기물을 자손 대대로 떠넘기는 핵발전이나, 온실가스를 어느 산업보다 펑펑 내뿜는 화력발전을 말한 것이라면, 공자의 지적에 반한다.

4대강 사업을 녹색성장의 사례로 주장한다면 정권이 힘을 다하자마자 삼척동자, 남녀노소, 동서고금, 대대손손에게 지탄받을 헛구호가 될 것이다. 녹색은 중앙의 선택과 집중이 아닌 지역의 자치와 분산을 요청하는데 거기에 성장이라니. 요컨대 철학과 고민이 결여된 구호는 언어유희와 도단일 뿐이었는데, 이제 느닷없이 ‘공정사회’가 대두된다. 과연 정명인가.

껍질을 켜켜이 감춘 양파처럼, 현 정권 수뇌가 추천한 행정부 수장 후보의 불공정했던 행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그러자 공정사회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단다. 그런가. 과거를 묻지 않는 사회가 공정하게 움직였던 사례가 세계만방의 역사에서 한 차례라도 있었다던가.

당장의 불공정도 지나자마자 과거가 되는데, 과거를 묻지 않는 공정사회가 내일의 공정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도대체 누구에게 검증을 받았나. 굴종을 요구하는 구호는 전혀 공정할 수 없다. 그 따위 공정사회론은 정명일 수 없다.

정부가 은근슬쩍 내밀었다 언론에 노출된 내년 예산은 어떤가. 분배를 그 근간으로 하는 복지예산을 줄인 대신, 4대강 사업 예산을 증액했다. 건설자본의 성장 이외의 공정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리나라에 와서 4대강 사업의 현장을 확인한 해외 수자원 전문가마다 한 목소리로 강바닥을 파고 거대한 제방으로 흐름을 차단하는 토목공사를 복원이라 칭하는 현 정부의 주장에 반대한다. 정명이 아니라는 거다. 벌써 두 세대 전에 그로인한 무시무시한 폐해를 경험하고 이제 굽이치며 범람하던 원래의 모습으로 환원하려 애쓴다고 했다.

후손을 생각한 공정사업이었다. 우리의 강물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흐르는가. 조상의 강은 후손의 강과 다르게 흘러야 하는가. 후손의 처지에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구호는 공정사회와 거리가 멀다.

채소가격이 현기증 나게 오른다. 추석이 지나면 나아지려니 믿었던 시민들은 김치가 없는 겨울을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한 포기에 만오천원이 넘게 된 이유를 많은 이는 4대강 사업에 그 원인을 돌린다. 채소를 재배하던 강 주변 농토에 6미터 넘게 강바닥에서 퍼 올린 오염된 모래와 자갈을 쌓아올리지 않았나.

기상이변도 변수였겠지만, 기상이변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나. 불공정한 온실가스 배출이 아닌가. 이번 홍수 역시 강 본류가 아니라 지류에서 발생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수해보상 역시 공정사회와 거리가 멀다.

말이 오염되면 어떤 논리도 기준을 잡지 못한다. 오늘의 오류가 내일 정당해질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 누구도 감히 공정을 논할 수 없다. 소통을 외면하면서 강조하는 소통은 굴종을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정사회’ 구호에서 과거 독재정권의 구호가 생각난다. “정의사회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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