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별똥별
  • 신 웅 순 칼럼위원
  • 승인 2011.01.22 00:15
  • 호수 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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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웅순 칼럼위원.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유난히도 별똥별이 많이 떨어졌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많이도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별똥별들은 내 소원을 듣지 못하고 먼 산녘너머 보이지 않는 곳으로 휘릭 사라지곤 했다.
적막을 지나고 고독을 지나고 한참을 더 지나야 닿을 수 있는 그 곳. 어느 때부터인가 아득한 그 적막에서 불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고향을 떠나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불빛이었다. 언제나 어머니는 거기에 있었고 거기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서 바느질하고 계셨고 거기에서 다듬이질하고 계셨다. 그 희미한 등잔불 밑, 따스한 어머니 곁에서 언제나 나는 잠이 들곤 했다. 

별똥별이 떨어진 그 곳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살면서 별똥별도 놓쳐버리고 떨어진 곳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생각마저 까마득히 지워져 버렸다. 애틋한 것일수록 둔감한 것인가. 반세기가 지나고서야 그 곳은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어머니 곁임을 깨달았다. 내 어렸을 적 포근히 잠들곤 했던 바로 그 곳이었다.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고 늘 그 자리에서 깜빡거리고 있는 어머니의 불빛. 그것은 영원에서 멎은 내 지난 삶의 아픈 궤적이었고 지난 세월 묵언의 기도였다. 

어머니의 정화수에 그믐달이 아득히 뜨고 졌던 불빛. 이제는 다시는 갈 수 없는 서러운 종교가 된 불빛. 그 많은 사색과 기도를 지나면 또 몇 생을 지나면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종착역. 세상에서 내 가슴 만큼 먼 곳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서 어머니가 있는 곳만큼 먼 곳이 또 어디 있으랴.
고향이란 무엇인가. 고향이 무엇이길래 서러움과 외로움을 이순에까지 끌고 와 내 영혼을 지치게 만드는가.

심심하고 힘들 때면 바위 고개에 올랐다. 진달래꽃 필 때, 뻐꾹새 울 때도 올랐고, 낙엽이 우수수 질 때, 눈이 소복소복 내릴 때도 올랐다. 낮에도 올랐고 밤에도 올랐다.
바위 고개에 올라서면 그냥 서러웠다. 보릿고개보다도 더 서러웠다. 가난 때문에 그랬을까. 서러워서 보이는 것들은 이내 신기루가 되어 멀리 멀리 사라지곤 했다.

봄비가 그랬고 눈발이 그랬다. 별빛이 그랬고 달빛이 그랬다. 부엉새 울음이 그랬고 소쩍새 울음이 그랬다. 그러나 제일 멀리 사라진 것은 내가 소원을 빌었던 어릴 적 그 별똥별들이었다.
우주에서 놓쳐버린 어렸을 적 그 별똥별들. 놓쳐서 내 가슴으로 영원히 철새 울음처럼 떨어졌던 그 별똥별들.

이젠 그 파편들이 나까지 떨어졌으면 좋겠다.
아직도 내 가슴에서 깜빡거리는 어머니의 등잔불. 그 곳에서 지금도 어머니는 내 구멍난 양말과 헤진 바지를 기우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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