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예찬
3월 예찬
  • 권 기 복 칼럼위원
  • 승인 2011.03.21 12:26
  • 호수 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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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은 유난이 눈이 많았다.
‘하얀 겨울’이라고 불릴 정도로 온 산하가 눈에 덮여 있었다.
3월의 들녘에는 차가운 눈 속에서 어떻게 새 생명을 토해냈는지 의아스럽게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새 눈이 토실토실하게 움트고 있었다.


필자는 고등학교를 대전으로 선택하였다. 그 당시에 직접 대전까지 가는 직행 버스는 하루에 서너 번 밖에 없었다.
머나먼 유학길을 떠났다가, 3주 만에 찾은 고향은 봄이 열리고 있었다.
불과 3주 지난 사이에 들판은 푸릇푸릇해졌다. 냉이를 캐고, 이른 쑥을 뜯는 여인들이 들판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 모습만 보고도 저절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논에는 거무죽죽한 개구리 알이며,도롱뇽 알들이 풀어져 있었다. 성급한사람은 별다른 풀을 뜯길 것도 없는데, 들녘에 소를 풀어놓기도 하였다. 뭔가세상이 차곡차곡 채워져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달력으로 치면 벌써 두 장 정도를 찢어낸 때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엊그제만 하여도 콧물이나 찔찔거리던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학교 길을 뛰어가는 모습이 참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요즘의 3월은 무섭다. 작년에는 천안함 사건으로 한반도가 들썩이더니, 올해에는 일본 열도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인간의 삶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파도 10m가 넘는 쓰나미가 훑고 간 자리는 너무나 참혹하기만 했다. 얄미운 일본이지만, 재난에 휩쓸린 일본인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후쿠시마 원전은 폭발 일보 직전에 놓여 있다.
50명의 결사대는 피폭 사망을 목전에 두고,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위해 최후의 순간을 대기하고 있다.
인간의 과학은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원자력 발전도 그렇거니와 자동차의 이용도 그러하다.
어느 한 순간, 아주 작은 실수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과학의 질주 시대를 살면서, 생명의 안전지대는 없겠는가를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3월!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을 맞이하여 희망 가득한 신춘이 되기를 바란다. 인간의 편의성만을 위해 나아가지 말고,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과학이 발전하기를 바란다.
3월의 준비로 만발하는 4월의 꽃들이 더 화창하게 빛나기를 바란다. 이제무서운 3월은 사라지고, 희망 가득한 3월이 해마다 되풀이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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