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친구였는데…”
“참 좋은 친구였는데…”
  • 고종만 기자
  • 승인 2011.07.04 15:20
  • 호수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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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남양학원 노상래 이사장 부인상

▲ 학교법인 남양학원 노상래 이사장이 최근 부인(사진 오르쪽)과 사별했다.
“나쁜 사람같으니라구. 나만 남겨두고 훌쩍 저 세상으로 가버리다니….”
학교법인 남양학원 이사장이자 홍성지방법원 조정위원회 고문인 노상래(87) 전 서천군의회의장이 최근 동갑내기 부인(고 임승광)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집사람이 떠난 지 닷새됐지만 어디 여행 다니러 잠시 집 비운 것 같다”는 노 이사장은 “아내 자랑하면 팔불출이라지만 시부모 잘 봉양하고 남편 잘 섬기고 자식 잘 키운 전형적인 현모양처였지”라고 말했다.
결혼 당일까지도 부인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모르고 결혼했지만 초야를 치른 첫날밤에서야 아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는 노 이사장은 “참 예뻤는데, 나 만나서 고생만 하다 간 것 같아 미안하지. 나를  놔두고 훌쩍 갈 줄 알았으면 생전에 아내에게 좀 더 잘해줄 걸”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노 이사장의 회상대로 작고한 부인은 22살에 부여군 세도면에서 시집와 60여년을 함께 살아오는 동안 1만여 평에 달하는 많은 농사를 손수 다 지을 정도로 억척스러운 면모를 보였다.
“허리가 굽어 거동이 불편했지만 집사람은 병을 얻어 쓰러지기 전날까지도 일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는 노 이사장은 “어느 정도 풍족하게 살 만한 형편이었지만 근검 절약하며 살아온 습관 때문인지 읍내에 나갈 때도 버스비가 아까워 걸어 다녔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장녀 현선(52)씨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교과서적인 삶 자체였고, 모든 교육을 행동으로 직접 보여준 지혜로운 어머니였다는 것.
“‘남의 물건도 내 물건처럼 아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어머니는 동네 를 지나 가다도 콩이나 벼가 쓰러져 있으면 신발 벗고 들어가 쓰러진 작물을 세워주시곤 했었다”는 장녀 현선 씨는 “어머니의 모습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워서 인지 결혼해서 지금까지 절약을 생활화하며 살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누구든 자식교육에 헌신하셨겠지만 어머니 역시 교육열이 높았다”는 장녀 현선씨의 말대로 노상래·임승광 부부는 1녀2남을 남부럽지 않게 훌륭하게 잘 키워냈다.


장녀 현선씨의 사위는 서울 영등포 김안과 부원장으로 근무 중이고, 장남 희공(50)씨는 청주에서 안경대리점을 하고 있다.
차남 희범(46)씨는 한양대 법대를 나와 1995년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헌법재판소 공보관을 역임하는 등 헌법재판소에서 근무 중이다.


“전에는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올라가도 어머니가 계셔서 부담이 안됐는데 혼자 계실 아버님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장녀 현선 씨는 “혼자되신 아버지가 외롭지 않게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최대한 보살피며 살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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