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센병 시인의 시
어느 한센병 시인의 시
  • 신웅순/칼럼위원
  • 승인 2011.08.10 13:06
  • 호수 57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년 전 소록도를 찾았다.
단종대 벽에 붙어 있던 어느 무명의 한센병 시인의 시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던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이동의 「단종대 」전문

  불효도 이런 불효가 어디 있을까. 꿈도 깨지고 자식도 못 낳고, 사람으로도 살 수 없었던 한센병 환자들. 한센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형벌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했던 수탄장, 정관 절제 수술을 해야했던 단종대, 감금, 감식, 금식, 체벌을 당해야만 했던 감금실 등. 천형의 형벌을 그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은 또 어땠을까.

  감금실의 벽에는 손톱으로 새겨진 알 수 없는 글씨들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연결시킬 수 없는 단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손톱으로 마구 지운 흔적들도 있었다. 절규만이라도 벽에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감금실은 영혼만이 빠져 나갈 수 있는 아우츠비츠 형무소였다.

  사람은 태어나 단 한 번 죽는데 그들은 세 번씩이나 죽는다고 했다. 한센병 발병, 죽은 시체 해부, 장례 후 화장이 그것이었다. 한센병의 슬픈 운명의 삶이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는 서정주 시「문둥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한하운 시「전라도길」.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면서도 오죽했으면 살 수만 있다면 어린 아기의 간까지라도 꺼내먹고 싶었을까. 

  오늘따라 적막하게 매미가 운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더위가 한창이다.

이럴 때면 언뜻언뜻 이집 저집 구걸하던 그 옛날 문둥이 생각이 난다.
들길도 멀리 가고 산길도 멀리 오르고 사람들과 언제나 멀리 살았던 문둥이.

처자식이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렇게 멀리로만 다녔을까.
얼마나 외로웠으면 밤새도록 멀리서 붉은 울음을 울었을까.

  애기의 간을 빼먹는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어렸을 적 얼굴이 우뚝불뚝 했던, 그 무시무시한 문둥이는 세상에서 가장 눈물겹고 서러운 사람들이었다.

   톤즈의 나병 환자들에게 손수 신발을 만들어 신겨주셨던 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님이 생각났다. 당시엔 그들도 톤즈의 나병 환자들과 하등 다를 게 무엇이었으리.

  살아서는 천형의 죄인이요 죽어서는 아름다운 죄인이었던 문둥이.
이제는 소록도에서 부처님과 하느님을 가슴에 안고 사람다운,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으리라.

  우리들의 삶은 이토록 얼마나 눈물 나도록 고맙고 행복한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