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일 게 널렸는데 왜 돈 주고 사료를 삽니까?”
“먹일 게 널렸는데 왜 돈 주고 사료를 삽니까?”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1.08.22 11:24
  • 호수 57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물 쒀서 소 키우는 도/계/현씨

평양에 있는 고구려 고분 안학3호분에는 소 세 마리가 나란히 구유에 머리를 대고 먹이를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묘의 주인은 고구려 16대 고국원왕(331-371)이니 1600년 전에도 여물을 주어 소를 키운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소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 판교면 복대리 도계현(59)씨가 그다. 도씨는 20년 넘게 소죽을 쑤어 소에게 먹일 뿐 돈 주고 사료를 사다가 먹여 본 일이 없다. 복대리 1구 골짜기 맨 위에 자리잡고 있는 도씨의 축사에는 한우 8마리와 송아지 5마리가 있었다.


“이 정도까지입니다. 더 이상은 힘에 부쳐 키울 수 없습니다.”
외양간에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쇠죽이 끓고 있었다. 지푸라기와 풀 뿐만이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 나오는 온갖 부산물이 함께 끓으며 구수한 냄새를 피웠다.


뜯어먹고 남은 옥수수와 감자 껍질도 눈에 띄었다. 8순 노모와 함께 사는 도씨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란 없다. 모두 소가 먹을 식량이 되기 때문이다. 마당 한 켠에는 사료용으로 확보해둔 볏짚, 처마 밑에는 쇠죽을 끓일 장작더미가 수북히 쌓여 있다.


“78년 홍수가 나 도랑이 넘쳐 큰 피해를 보고 몸도 많이 다쳤습니다.” 큰 좌절을 겪은 그는 신앙심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고 소를 키우기 시작하며 살림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남들은 사료를 사다 소를 먹이는데 저는 사료를 살 돈이 없었습니다. 내가 부지런히 움직이면 소 먹일 것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데 뭐하러 돈 주고 사료를 삽니까? 고구마순, 콩대 이런 게 전부 소가 먹는 것입니다.”
되새김질을 하는 소에게 본래 곡식을 먹이지 않는 법이다. 미국에서 수입한 옥수수로 만든 사료를 먹이면 위 안에서 탈이 생겨 병이 난다. 이를 막기 위해 각종 항생제를 투여한다. 이런 식으로 수백마리씩 밀식해서 공장식으로 축산을 하다 보니 구제역 등 문제가 생겼다.


유기축산에서 도씨처럼 화식우를 키우는 곳이 있다. 친환경 인증을 받고 백화점 등에 높은 가격에 공급한다. 전통 방식으로 소를 키웠으니 쇠고기 고유의 맛이 날 것이다. 그러나 도씨가 키운 소는 마땅한 판로가 없다. 도씨처럼 소를 키우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도씨는 이런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날이 밝으면 소와 함께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소 한 마리를 길을 들여 도씨와 함께 일하는 소가 있다. 경운기도 닿지 않는 산밭을 갈고 철판을 이용해 만든 특수 썰매를 끌며 산에서 쓰러진 나무 등을 나른다.


소와 함께 그의 주요 수입원이 토종꿀이다. 도씨가 토종꿀에 애착을 갖는 것은 수해를 입고 몸이 다쳐 사경을 헤맬 때 토종꿀을 먹고 나았기 때문이다. 꿀은 본디 양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좋은 약이다.
“작년에 병이 들어 태반이 죽었는데 다시 50통으로 늘려 놓았습니다.” 자연을 크게 거스르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온 그가 땀으로 자연 속에서 일구어낸 것들이 빛을 발할 날을 기대해 본다. 

▲ 도씨와 함께 일하는 소. 고삐가 메어져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