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할아버지들의 전통계승
한산면 마양리 짚풀공예교실
유쾌한 할아버지들의 전통계승
한산면 마양리 짚풀공예교실
  • 최정임 기자
  • 승인 2011.09.30 15:10
  • 호수 58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젊은이들도 나이 들면 이어가겠지”

▲ 할아버지들에게 짚풀공예를 가르치는 한상도 할아버지.
“그거 뭐 만드는 겨?” “그냥 다 만들면 봐~”
한산면 마양리 마을회관 마당의 정자 마루에서 4명의 할아버지들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농업기술센터의 농업인 교육의 일환으로 한상도 할아버지에게 짚풀공예를 배우고 있는 마양리 노인들이다. 선조 때부터 자연에서 얻은 짚풀 등을 이용해 생활도구들을 만들어온 전통 기술을 계승하기 위해 솜씨 좋은 한다(韓多:한산의 다양한 문화가치라는 공예브랜드)의 한상도 작가에게 매꾸리(종다래끼), 짚신, 삼태기 등을 만드는 방법을 매일, 그리고 틈틈이 배우고 있다. 이날은 짚 대신 모시풀을 이용해 만들고 있었다.


회관 안에서 새어나오는 서림국악원 김호자 원장에게 전통문화를 배우는 할머니들의 장구소리에 기죽은 듯 만들기에만 열중하던 할아버지들이 이연구 할아버지가 조그만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자 “왜 이제 왔냐”며 “빨리 와서 같이 만들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뒤늦게 온 이연구 할아버지가 만들고 있는 무엇인가를 보며 할아버지들은 그것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것을 핑계로 티격태격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결정을 하려는 심산인지 그 정체를 밝히지 않는 할아버지에게 어느새 와서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할아버지 한 분의 “아, 내일 죽을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냥 뭔가 가르쳐 줘!”라는 우스갯소리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이게 뭔지 알아서 뭐하냐”며 센스 있게 또 대답을 거부해 할아버지들은 또 한바탕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들의 그런 대화에 마음 한쪽에서 씁쓸함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이제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선조들의 지혜가 스며들어 있는 이런 전통공예의 맥이 끊어지는 게 아닐까’하는 두려움 같은 안타까움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배우는 사람 없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숨은 뜻을 눈치 챘는지 이마을 노인회장인 이명복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들이 이거 해서 돈도 안되는데 앉아서 하려고 하간디? 젊은이들도 우리처럼 나이 들면 이어 가겄지”라며 연륜이 느껴지는 느긋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도 큰돈은 아니지만 기술 좋은 한상도 작가는 짚풀공예로 용돈은 부족하지 않게 벌고 있단다. 게다가 독일, 미국, 브라질 등 5개국이 넘는 곳에서 그의 작품을 주문해 사가고 있다. 한상도씨는 “외국인들이 선물하겠다고 많이 사 가는데 ‘받은 사람들이 너무들 좋아한다’고 하더라”며 “팔기 아까워 소장하려고 남겨둔 작품을 한 관광객이 반기문 총장에게 선물하려고 한다고 계속 졸라 결국 팔았던 적도 있다”고 은근히 자랑을 내비쳤다.


한참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던 중 이태구 할아버지가 어느새 손바닥 크기만한 장식용 삼태기 하나를 완성해 “며칠 걸렸는데 다 만들었다”며 잠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번엔 짚신을 만들어봐야지”하며 모시줄을 꼬아 양쪽 엄지발가락에 끼웠다.


짚신 만드는 모습을 처음 본 취재진에게는 마냥 생소한 모습이다. “옛날엔 짚신이 하루를 못가고 다 헤지니 하루 일이 끝나고 나면 저녁엔 짚신 삼는 게 일이었지”라며 또 자신들만의 추억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 때 회관에서 장구 배우기를 마치고 나온 할머니들이 동명이인인 또 다른 이명복 할아버지의 매꾸리가 완성돼 가는 걸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옆에 있던 장식용 삼태기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구경하며 “돈 줄 텐 게 나도 짚신 하나 만들어줘”라고 관심을 보였지만 “저거 재료값만 해도 만원은 넘겠네. 몇 만원 줘야 혀”하는 다른 할머니의 말에 이내 포기했다.


정자 앞으로 모여든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돌아가고 취재진도 인사말을 전하자 할아버지들은 더 있다가 가라며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기자 양반, 우리도 ‘6시 내 고향’에 나오게 연구 좀 해봐”라고 농담을 던지며 마지막까지 유쾌했던 대화를 마무리 했다.

▲ 한산면 마양리 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짚풀공예를 배우는 할아버지들. 왼쪽부터 한상도 이명복 이연구 이태구 할아버지와 이명복 마양리 노인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