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넋두리 시
두 편의 넋두리 시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1.10.17 10:51
  • 호수 5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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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웅순 칼럼위원

 

미움 사랑 세월과 함께 살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때마다
쏟아지는 시린 유년의 달빛 들녘이 보였다
공터를 돌아 이사가던 내 변두리 불빛이 보였다
사십년 샛길을 막 빠져나온 지금
달빛 젖어 우는 물새 하늘은 더욱 맑고
햇살 터진 들꽃들 더욱 붉어 눈부신데
언제부터인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텅 빈 산도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 거기 마중 나와 나를 기다리는
어느새 눈에 흥건히 고여와
자비 깊숙이 가라앉는 하늘과 산
강물은 강물을 치며 산과 들을 돌고
철새는 철새를 부르며 우주를 돌고
지척은 말이 없다
아내는 내 쓸쓸한 종교
먼 여행에서 언제나 손님으로 돌아오는 나를
언제면 알아볼까 


-「함께 살면서」전문

 

 

  경향 신문에 1995년 11월 2일자로 누군가가 올려놓은 필자의 작품이다. 얼마 전 우연찮게이 시를 발견했다. 40년 샛길을 막 빠져나올 때쯤이었으니 20년은 족히 되었으리라. 학위 받기 전 나의 자화상은 이랬다.


  학문에 목이 말라있었던,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던 때였다. 무엇이든 오래 묵으면 한폭의 명화가 되는가. 그 때 두고 온 저녁 노을과 쓸쓸한 가로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공부에만 올인했던 바보. 이를 바라보아야만 했던 천치. 나와 아내는 겨우 침묵의 거리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불혹의 강은 깊었고 지천명의 산은 높았다. 강을 건너 산을 넘어 막 이순의 길가를 빠져나왔다.  외로움과 고독이 만날 때는 참으로 적막했다. 그 때마다 채찍질 해준 천치가 그렇게도 고마웠다. 어느날부터인가 아내는 내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다. 적막하고 우직한 것이 어디 세월뿐이랴. 
  지금 이런 시면 어떨까.

어느 날 행간에서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어느 날 빈칸에선
배가 뜨기 시작했다

뻐꾸기 울 때쯤이었나
부엉새 울 때쯤이었나

 -「어머니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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