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개(犬) 이야기
우리 집 개(犬) 이야기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2.02.07 15:56
  • 호수 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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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하얀색과 누런색이 멋지게 어우러진 복실이라는 개를 키웠다. 대문이 따로 없었던 우리 집을 복실이는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학교에 갔다 오는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긴 혀로 핥아주는 복실이가 있어 행복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해 어린이 날, 어머니는 시내 ‘차 없는 거리’에 가서 재미있게 놀다 오라며 오빠와 나에게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시며 서둘러 우리 등을 떠미셨다. 차를 무서워하지 않는 지금과는 달리 우리 어릴 적에는 자동차 경음기만 들려도 멀찌감치 도망가던 때여서 자동차가 사라진 시내 한복판을 마음껏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린이 날의 특혜였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 장난감이며 아이스크림, 솜사탕 손수레를 밀고 나온 장사꾼이 북새통을 이뤘다. 오빠 손을 잡고 즐겁고도 고단한 어린이 날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우리를 반겨줘야 할 복실이가 보이지 않았다. 온 동네를 찾아다녀도 복실이는 어디에 숨었는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 애타게 찾아다니는 오빠와 나는 복실이를 팔았다는 어머니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흙마당에 누워 복실이 데려오라고 한참을 울었다. 우리가 즐겁게 놀 시간에 창살에 갇혀 끌려갔을 복실이가 불쌍해서 목청을 지르며 울었다. 그 이후 우리 집에서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4년 전, 하얀 털의 까만 눈을 가진 손바닥만한 녀석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 같이 있던 사람들도 녀석의 앙증맞은 외모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집안에서 키우기엔 부담스럽다며 서로에게 떠밀다 마음약한 나는 잘못하면 유기견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세 아이들은 좋아라 만세를 불렀고, 애완동물에 대해 부정적이던 내가 그 때 무슨 정신으로 강아지를 데려왔나 싶다. 사람들 마음을 쏙 빼놓던 녀석의 앙증맞은 외모는 몇 달 만에 온 데 간 데 없어졌고 5kg이 넘는 녀석을 보며 이렇게 큰 개를 집안에서 키우냐며 머리를 갸우뚱한다.
동물을 집안에서 키우며 불편한 것은 말 안 해도 짐작이 갈 테니 생략하고, 오랜 시간 녀석과 함께 하며 소소한 기쁨을 얻기도 하고 순간순간 깨닫는 게 많다. 개만도 못한 사람, 개 같은 사람, 개보다 더한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개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가 많으니 나는 개만도 못한 사람일 때가 많다.
하루에 열두 번을 밖에 나갔다 들어와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기는 녀석을 보며 충성 내지 한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퇴근할 때 간식이나 물건을 갖고 들어갈 때가 많은데, 사람의 들고나는 것에 익숙한 가족들은 나보다도 손에 든 것을 먼저 보고 그 것에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것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주인의 새로운 등장에만 집중하며 반가워한다. 그래서 때론 남편이나 아이들이 귀가할 때 녀석보다 더 큰 액션으로 가족을 맞이하려고 한다. 녀석이 좋아하는 간식 조각을 던져줄 때가 있다. 배가 부르면 먹지 않고 간식을 지키느라 아무 것도 못한다. 요즘은 설 때 뽑아놓은 가래떡 조각을 하나씩 주곤 하는데 이 조그만 것을 지키느라 더 큰 간식이나 자유를 놓치는 녀석을 보며, 나도 소소한 무엇인가를 움켜쥔 채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사는 건 아닌지 내 모습을 돌아본다. 주위가 산만할 때 가래떡 조각을 뺏는 순간 녀석은 평상의 자유로움을 누리게 된다.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애완동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키우는 사람의 예절도 수준이 낮고 키우지 않는 사람들의 눈총도 따갑기만 하다. 그래서 녀석으로 인해 이웃에게 피해를 줄까 늘 노심초사한다. 이제 제법 마음이 통해 대화가 가능해진 녀석이 아프지 않고 편안한 견생(犬生)을 살다 세상을 떠나면 복실이를 보낸 후 개를 키우지 않았던 어머니처럼 아마 나도 개를 키우지 않을 것 같다. 개보다 더한 사람이 되어야겠기에 녀석에게서 느끼고 깨닫는 것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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