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권하는 사회
소비 권하는 사회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2.04.06 18:50
  • 호수 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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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시장터

소유하던 것을 버리고 거기에서 오는 공백에 길들여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으로 새로운 소유에는 적응하기가 너무 쉽다. 3년 전에 어렵사리 텔레비전을 생활에서 아웃시키고 시간을 벌어 간간히 책도 읽고, 뒹굴뒹굴 생각도 굴리다가 그래도 심심하면 뒷산이라도 휘이 한바퀴 돌아오곤 했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조금 넓은 집(사택)으로 이사를 시켜줬는데 전에 살던 직원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애물단지를 놓고 갔다. 텔레비전을 버리기까지 십 수 년이 걸렸는데 그 녀석이 또 다시 우리 삶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 때 딱 잘라 외면했어야 했는데 철퍼덕 주저앉은 녀석의 엉덩이를 밀어내지 못한 게 잘못이다. 텔레비전 채널이 몇 개 안돼서 볼거리도 별로 없고, 그 동안 멀리하던 터라 정말 심심하면 전원 스위치를 누르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녀석 앞으로 모여들었다. 덕분에 이사 와서는 책 한 권 시원스레 읽지 못한 채 방 한 구석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몇 년 사이에 홈쇼핑 채널이 많아졌다. 13개 채널 중 5개 채널에서 하루 종일 물건을 팔아댄다. 이제는 홈쇼핑회사가 단독 채널을 갖고 때비누부터 자동차까지 별의 별 것을 보여주며 사라고 한다. 한동안 쇼핑몰을 모르다가 마음까지 홀딱 뺏는 방송을 보고 있으면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고, 안사면 손해를 보는 것 같아 3개월 동안 5번이나 전화기를 눌러댔다. 이사를 많이 하며 많은 것을 버린 덕에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다. 이삿짐이 적다며 할인까지 받았으니까. 그런데 무엇인가 갖고 싶고, 채우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얼마 전,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필리핀에 있는 작은 교회에 교인들의 헌금으로 교회를 짓고 헌당예배가 있어 참석했다. 짧은 기간 필리핀의 몇 곳을 둘러보았고, 하루 저녁 홈스테이를 하며 일반 가정을 살펴보니 간소한 삶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머문 집은 필리핀 사람들이 동경하는 직업인 엔지니어 부부가 사는 가정이었다. 15평 남짓 되는 규모에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우리는 1년 중 한창 무더운 십 여일을 위해 집집마다 에어컨을 갖고 있는데, 1년 중 반 이상이 더운 그 곳 사람들은 대부분 선풍기로 생활하고 있었다.

 밥상도 밥과 고기와 야채를 접시에 담아 먹는 한 그릇 음식이라 먹는 인심이 풍성한 우리나라 밥상에 비해 초라하게 까지 여겨졌다. 물론 경제 수준이 낮아서 그러하겠고 기후에 따른 전통이 각자의 문화를 만들었겠지만, 그들의 생활을 엿보며 내가 많은 것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이미 갖고 있는 것이 많음에도 더 좋은 것, 더 넓은 것, 더 비싼 것을 위해 감사와 만족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무엇인가를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의 충만함을 느낀다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한자성어가 나의 소유욕에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함은 부족함과 없음에서 비롯되기 보다 ‘최고’와 ‘최대’를 향해 치닫는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진공묘유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없음과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불편해하지 않는 소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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