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아래에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2.06.12 10:28
  • 호수 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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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엘리야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과 영성(靈聖)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선지자였다. 다른 신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의 영적 대결에서 승리한 그가 목숨의 위태로움을 피해 도망을 갔고, 광야 한 가운데 로뎀나무 밑에 앉아 그의 신에게 죽기를 구하였다.


이 사건은 반전드라마다. 당대에 엘리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성을 갖는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일깨우고, 우매한 백성을 올바로 이끌지 못한 왕권에 놀라운 기적으로 맞섰던 엘리야의 기백은 온 데 간 데 없이 생명을 빼앗겠다는 적군의 엄포에 혼비백산하여 도망하여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며 설교가들은 여러 모양으로 해석을 한다.


연일 매스컴에는 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오늘도 국내외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건이 주요기사로 다뤄지고,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요 며칠 사이 내 주변에서도 그런 안타까운 소식을 줄곧 듣고 있으니 이제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웃의, 내 친구의, 내 가족의 소식이어서 망연자실 안타까움은 더해진다.


녹록치 않은 인생이다. 아직 그런 경험 해보지 않은 분들도 많겠지만, 힘겨움이 목까지 차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맺어진 인연의 끈 때문에 아픔을 남겨줄 수 없어 뜨거운 그 것을 꿀꺽하며 뱃속 깊은 곳에 밀어 넣어 버린다. 그럼에도 그런 것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만큼 무거웠을 떠나버린 그네들의 외로움과 힘겨움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엘리야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엘리야는 삶에서 멀리멀리 도망을 쳐 아무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대사(大事) 후의 공허감이든, 목숨에 대한 애착이든, 홀로 남겨진 외로움이든 어떤 이유이든지 엘리야는 생명을 이어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죽기를 소망하며 잠이 들었다. 천사(의역;천사와 같은 사람)가 나타나 지친 엘리야에게 물과 떡으로 먹여 힘을 얻게 하고 그는 남겨진 사명을 완수하였다.


엘리야가 잠든 곳이 로뎀나무 아래였다. 인상적인 것은 로뎀나무는 물이 귀한 사막에서 2m까지 자라며 꽃을 피운다. 인생의 끝을 보기 위해 도착한 곳 사막에서 생명이 움트는 로뎀나무에 웅크린 엘리야처럼, 지친 영육을 채워줄 천사(사람)를 만난 엘리야처럼, 우리도 삶의 끝자락에서 로뎀나무를 만나고, 천사를 만난다면 인생의 또 다른 서막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막일지라도 로뎀나무는 있다. 아니, 사막에는 로뎀나무가 있다. 내 주변에 지쳐 로뎀나무에 쓰러진 친구가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그 친구에게 가서 따뜻한 떡과 시원한 물 한 병 먹이며 위로하고 같이 눈물 흘리면 우리는 충분히 천사가 된다. 이번에는 내가 너의 천사가 되어주고, 다음에는 네가 나의 천사가 되어 로뎀나무 아래에서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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