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위기와 “통합” 이데올로기
유럽경제위기와 “통합” 이데올로기
  • 장호순 교수
  • 승인 2012.06.25 13:50
  • 호수 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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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8일 전 세계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스의 총선 결과 덕분이이다.  유로존(Euro Zone) 잔류를 약속한 정당들이 그리스 의회 다수당이 됨에 따라 유럽경제 위기가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그리스 경제가 파탄나고, 유럽 경제가 마비되고, 그로 인해 세계경제가 위축되는 최악의 상황은 당장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총인구 1130만명에 불과한 그리스의 경제가 5억명에 달하는 유럽연합은 물론, 전세계 경제에 시한폭탄이 된 것은 유럽의 섣부른 경제 통합이 가져온 결과이다. 1999년, 유럽 연합 27개 국가 중 17개 국가는 기존의 화폐를 버리고 <유로>라는 새로운 공통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독일의 마르크, 프랑스 프랑, 이탈리아 리라 등이 사라졌다. 유럽 연합국가들은 미국에 버금가는 거대 단일통합국가로 가는 전 단계로 경제체제의 통합을 선택했고, 그 일환으로 단일통화 체제를 만든 것이다. 단일 통화를 사용하면서 각국의 금융체계도 자연 통합되었다.
유로체제의 출범과 더불어 독일 등 북유럽 부자나라 자본이 경제규모가 취약한 남유럽 국가에 대거 유입되었다. 빚 얻은 돈으로 흥청망청 내던 그리스는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더 이상 빚을 얻기 어려워졌고, 결국 국가경제가 파탄상황에 이른 것이다. 지난해 그리스 경제는 6.9% 감소했고, 재작년에도 3.4% 감소했다.


유럽발 경제위기는 섣부른 통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로를 도입하면서 유럽의 많은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이 단일통화와 금융통합으로 인해 얻는 효율성을 강조했다. 나라마다 다른 화폐단위로 인한 비효율성이 제거될 것을 기대했었다. 유럽 국가 간의 거래에에서 외지 통화인 달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그렇다면 유로존 통합이 위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통합의 장점만 강조하고 그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에 대해서는 무시한 탓이 크다. 그러다 보니 자연 통합의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유로존 위기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그리스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두고 유럽연합 국가 간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은 대한민국 사람들도 지극히 선호하는 파라다임(paradigm), 즉 의식구조이다. 조선왕조하의 단일민족국가체제, 남북분단체제 하에서의 통일구호, 경제개발시기의 재벌체제 모두 “통합”을 지배이데올로기의 한 요소로 강조하고 강요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개인과 조직을 반국가적, 반사회적, 비생산적 존재로 소외시키고 무시했다.


남북분단이나 경제분배 문제를 두고는 첨예한 입장차이를 보이는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진영이지만 모두 “통합” 이데올로기를 선호한다. 지역과 계파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한 야당이 선택한 정당명이 민주“통합”당이고, 뿌리깊은 반목과 불신의 역사를 가진 급진 진보정치세력은 국회원내 진출을 위해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정당이 최근 보여주는 행태에서 통합의 의미를 찾아보긴 힘들다.


한편 여당은 그동안 잠잠하던 행정구역 통합을 다시 꺼내들고 나왔다. 지역정서나 전통이나 문화를 무시한 채 규모의 경제나 행정 효율성을 앞세워 소규모 행정조직을 합치겠다는 것이다. 물론 무리하고 섣부른 통합으로 발생할 문제에 대한 대비책은 없는 상태고, 그 고통과 부담은 모두 해당지역의 주민들이 져야한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통합은 무척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당신없인 못살 것 같아 “통합”한 젊은 부부들이 가정을 꾸리고 나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풍파를 만나는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상호이해, 애정과 신뢰, 경제적 독립이 필수적이다. 행정통합이나 국가통합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그리스 총선은 유럽사람들의 그리스 국민들에 대한 신뢰를 잠시 확보하는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애정으로 바뀌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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