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된 날
꽃이 된 날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3.01.21 11:09
  • 호수 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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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는 만남 중에 간직하고 싶은 만남이 있다. 당장은 만날 수 없지만 꼭 한 번 만나고픈, 혹은 만나지 않아도 생각만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만남이 있다. 그런 만남 중에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은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선생님은 공부 잘하고 부모님이 학교에 자주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만 친절한 분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나의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것은 가을운동회가 전부였다. 먼지바람 이는 날에도 눈에 띄는 교실보다는 운동장 구석에 신문지 깔고 먼발치에서 담임선생님의 얼굴만 확인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선생님은 어렵고 껄끄러운 분이라고 생각했다.


학교가기가 지독히 싫어서 꾀병을 일삼던 초등학교 4학년, 동네에서는 남자아이들을 이기고 다닐 만큼 활발하고 개구진 아이였지만, 학교에만 가면 꿀 먹은 벙어리요 얌전한 요조숙녀가 돼버리고 말았다. 매사가 자신없고 부끄러웠던 나는 발표를 잘 시키는 선생님이 부담스러웠다.

다른 선생님은 손 드는 아이, 공부 잘하는 친구들 위주로 수업하셨는데 4학년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 전체를 한 명씩 일으켜 세워 물어보곤 하셨다. 선생님의 호명에 일어서면 세상은 정지되고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머릿속에 답은 있는데 입에서 맴돌 뿐 도대체 내뱉어지지 않았다. 3학년 때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해 바지에 실례를 했을 정도로 남 앞에 서는 게 서툰 아이였다. 결국 선생님의 재촉에도 대답하지 못해 손을 들고 서있거나 손바닥을 맞는 일로 벌을 받았다.


선생님의 민주적 교육은 나의 평화로운 세계를 깨고 말았다. 선생님이 싫었고 학교는 도망칠 수 없는 커다란 검은 그림자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떻게 하면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을까 궁리를 하느라 이불 속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집에서는 한없이 착한 다섯째 막내딸이라 부모님은 꾀병을 의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잦은 병치레를 걱정하셨다.


5학년이 된 나는 여전히 얌전한 아이였다. 공부에 열의가 있어서가 아닌 책상에 앉아 마땅히 바라볼 곳이 없어서 칠판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지냈다. 신학기가 지나고 운동장의 플라타너스 잎들이 연록으로 물 들던 어느 날, 수업하시던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수업태도가 제일 좋은 학생은 양선숙이다”라는 깜짝 놀랄 소리를 하셨다. 나는 칭찬받을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 소곤거릴 친구가 없었고 선생님 눈을 거스릴 용기가 없었을 뿐인데.... 존재감 없던 나를 향해 아이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세상의 변두리에 있던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된 날이다. 이후로도 선생님은 나를 분단장으로, 미화부장으로 임명하면서 꾸준한 관심을 보여주셨고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처음으로 시험공부를 하게 되었다.


더 이상 학교는 가기 싫은 곳이 아니라 눈 감으며 기대하고 눈 뜨면 이불을 박차고 달려가는 곳이 되었다. 무엇보다 선생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의 변화는 이후에 만나는 선생님들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뢰를 심어주었다. 조용해서 드러나지 않던 작은 아이에게서 장점 한 가지를 끄집어내어 칭찬으로 연결시켰던 선생님은 지금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의 물꼬를 터 준 분이셨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다. 흔한 비유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지지가 새로운 존재를 만들기도 한다. 칭찬의 묘미를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칭찬받는 일을 좋아할 뿐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일에는 넉넉하지 못하다. 사람을 만나며 맺어지는 관계 속에서 때론 누군가의 선생이 되기도 한다.


지식으로 되는 거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나의 선생님이 그러했듯이 사람에게 관심 갖고 좋은 점을 칭찬해서 사람을 세울 수 있다면 마음을 쏟아 노력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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