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 “아버지께 전하고 싶습니다”
독자마당 - “아버지께 전하고 싶습니다”
  • 뉴스서천
  • 승인 2003.03.28 00:00
  • 호수 1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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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죽음만큼이나 멀리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
어느 누구에게도 당당하시던 아버지께서 금년 초 아무런 말씀 남기지 않으시고 홀연 넉넉하게 떠나가신 아버지!
진정 한마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없으셨던 지요
적잖게 시간 흐르다 보니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가시기 일주일 전쯤 일이죠. 어느 때처럼 누워 계시던 아버지 계선 일어나시더니 제손 차가워 보였던지 꼭 잡아 주셨던 것이 저하고의 마지막 인사였던 것을, 그리고 웬만하면 전화도 하시지 않던 분이 별일 없이 전화를 하시곤 하셨던 것은 아버지만의 죽을 준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죄스럽습니다.
항상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모두 건강하신 것만 같아 무심히 지나쳤던 오류를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이 어리석음 용서하십시오.
제 나이도 논어의 위정편에 의하면 불혹(不惑)을 지나 지천명이 다가오는데 항상 청춘인 것만 같은 생각은 절 혼돈 스럽게 만듭니다.
잠시 청춘이 몇 살인지 헤아려 봅니다.
18살, 20살, 25살, 30살 아니 선을 그어놓지 않았기에 마음이 젊으면 그냥 청춘이라 생각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에 의하면 청춘이란 장밋빛 볼 붉은 입술이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을 뜻한다고 하였으니 의지를 잃지 않으시고 살아가시던 아버지께서는 청춘에 생을 다하셨다 되뇌어 봅니다.
아버지!
그 마지막 악수를 지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버지 딸임을 한번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그 말을 하고 싶은데 그리고 어렵겠지만 정말 어려워도 마음을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려고 한다는 말 또한 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긴 여운을 남기고 가신 아버지!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우리 모두 힘닿는 데까지 잘 모시겠으니 잊으시고 편히 쉬세요.
이제 잔설마저 온 간데 없는 당신의 새집엔 잔디와 꽃이 푸를 것입니다.
지상의 여기는 겨울 빛 고개 넘은 봄이 천천히 아기 걸음으로 다가와 꽃눈이 날로 붉어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고명딸 올림
추신: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아버지 필적이 아쉬워 어머니한테 주고 가시기 아깝다고 하십니다. 아버지 현주소는 장항읍 원수리 57번지 아버지 당신이 태어나신 그곳입니다.

<홍성희/장항읍 원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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