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할 우리 아이들
잊지 말아야할 우리 아이들
  • 문영
  • 승인 2014.05.02 16:23
  • 호수 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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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참사 속보를 전하느라 중단되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사고 일주일이 넘자 하나 둘씩 제 시간을 찾아 방영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고 나면 오락프로그램마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참담한 사고 소식으로 비롯된 국민적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다른 소식도 전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비통하게 울부짖는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실은 나 역시 사고 닷새쯤 지난 뒤부터 참사 방송이 나오지 않는 채널을 찾아 리모컨을 누르기 시작했었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좌초되었는데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으로 세월호 침몰 참사 특보가 시작되었다. 배가 서서히 가라앉는 모습과 살기 위해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국의 안방에 중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배가 순식간에 침몰된 것이 아니니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 구조된 174명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의 생존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이름이 바뀌어 인양되는 시신의 수가 늘어가기 시작하였다.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금방 구조될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맹골수로의 어둠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이다. 실종 및 사망자 중에 학생들이 많아서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위로한다고 가셔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자식 잃은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힘들고 지친 삶도 꽃처럼 피어나는 아이들의 꿈을 버팀목 삼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는 것이며,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고, 살릴 수만 있다면 제 목숨을 대신 내놓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데…. 차오르는 물 속에서 가족에게 사랑을 전하며,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라는 마지막 문자를 찍었을 아이들의 공포가 떠올라 울컥 눈물이 솟는다.


  이런 나라에 너를 낳아 미안하다는 어머니, 비 오는 바다를 향하여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아버지,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가 다시 나오지 못한 교사,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저는 시체로 발견된 착한 아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부모, 살아남아 미안하다며 돌아가 아이들의 선생이 되겠다고 떠난 교감 선생님, 그 밖에도 수없이 아까운 목숨이 희생되었다. 어른들은 우르르 몰려가 요란을 떨었지만 두서없이 서두르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였으며,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한계 긋기에 급급했다. 하늘마저 노하여 비바람이 몰아치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나무랐고 실종자 가족들을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다 무너져 가는 배를 헐값에 구해다가 겉모습만 번드르르하게 치장해 놓고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기업가나 가짜라도 명품으로 치장하여 겉멋을 내던 우리들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많은 것을 쉽게 얻어 남보다 잘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온 결과 큰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했었다. 아파트가 무너져 내린 것을 필두로 비행기가 추락하고, 다리가 무너져 내렸으며, 백화점과 강당이 무너지고, 지하철에 불이 나는 등 인간들의 잘못으로 비롯된 대형 참사 때문에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는데 지금까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상처가 나면 빨간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응급처치만 한 뒤 그 위에 고급화장품을 덧바르고 명품으로 치장하기 바빴으니 안으로 곪아 뼛속까지 농이 스며드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아니, 짐작은 했지만 어제도 괜찮았으니 오늘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했고,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살아있음이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사람이다. 숱하게 많은 생명을 내동댕이치고 제 한목숨 살기 위해 몸부림친 어리석은 자들이 살아있음을 치욕스럽게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제자리를 찾아가듯이 우리들의 일상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차차 가라앉겠지만 가슴에 새겨진 불신과 불안은 쉽게 치료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뿌리까지 뽑아내고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만약 주춤거리다가 고쳐지지 않은 건축물 위에 다시 탑을 쌓아 올린다면 어느 누가 이 나라에서 살 것이며, 누가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어른들의 잘못으로 목숨을 잃은 우리 아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아비규환에서 살아 나온 소중한 우리 아이들도 치유되어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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