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나쁜 유전자는 세상에 없다
■모시장터/나쁜 유전자는 세상에 없다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7.09.27 17:33
  • 호수 8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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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칼럼위원
‘유전적 하중’이라는 개념을 대학원 시절에 배웠다. 현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있기에 그 개체를 끌어안은 집단은 급격한 환경변화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하는 유전적 하중을 영어로 ‘genetic burden’이라 했다.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를 가졌기에 개체의 삶은 고단하겠지만 환경은 변한다. 현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가 유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집단일수록 순혈 집단에 비해 생존력이 높다. 공장축산에 적용된 양계장의 닭이나 축사의 돼지가 조류독감과 구제역에 속수무책인 이유의 설명이다.

말라리아가 자주 출몰하는 아프리카에 드물지 않은 ‘겸상적혈구빈혈증’이란 유전병이 있다. 돌연변이로 헤모글로빈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가 낫처럼 구부러지는 현상을 보이는 겸상적혈구빈혈증은 치명적인데, 그 증상을 가진 사람은 특이하게 말라리아에 감염되지 않거나 감염되더라도 금방 치유된다고 한다. 만일 일찍이 아프리카에 겸상적혈구빈혈증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사망했을지 모른다.

현 환경에 최상으로 적응한 유전자가 바뀐 환경에 어떻게 발현될지 과학은 미리 파악할 수 없다. 불량으로 과학자들이 규정한 유전자를 치료 또는 개선 차원으로 없앤다면 환경이 변화된 이후 인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아무리 찬란한 과학기술도 변화하는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 지진대 위의 리아스식 해변을 제멋대로 매립하고 세운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과학자들이 안전을 장담하기에 설계수명을 연장했을 것이다. 화석연료 과다 사용으로 경신하는 한여름 무더위를 어떤 과학기술이 통제할 수 있겠나? 심화되는 사막화, 초미세먼지, 방사성 물질, 그리고 음식 속의 조작된 유전자는 전에 없었다.

최근 세칭 ‘유전자 가위’라고 말하는 생명공학 기술로 비대성 심근경색증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계기를 우리 과학자가 만들었다고 언론은 일제히 반색을 했다. 한술 더 떠 그런 기술력을 보유해도 연구는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시대착오적 생명윤리 관련법 때문이라고 덧붙이면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도 황우석 사태가 발생하고 줄기세포를 권력층에서 미용 목적으로 주입하는 시대에 추구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유전체교정연구단’에서 주도한다. 그런데 막대한 국가 연구비를 사용하는 그 연구단체는 유전자를 교정한다고 주장한다. 교정이라니? 유전자가 무슨 큰 죄라도 졌나?

“기회가 있으면 생명윤리학자를 찾아가 밤을 새서라도 토론하겠습니다.” 지난 8월 3일 프레스센터, 유전자 가위 기술로 비대성 심근경색증 치료 가능성을 인간 배아 단계에서 입증한 연구를 학술지 ‘네이처’에 투고해 주목된 기초과학연구원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유전자 교정 기술 도입 및 활용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향’을 주제로 열린 과학기술한림원 원탁토론회에서 자신의 심정을 그렇게 알렸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장차 수많은 사람의 유전자 결함으로 온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밝힌 그가 생명윤리학자와 소통하고 싶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감동해야 할까? 세계적 연구자가 소수에 불과한 생명윤리학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는가. 유전자를 교정하려는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가 미칠 사회적 파장을 사전에 고민하고 생명윤리학자와 연구 목적과 방법을 미리 논의하지 않았다. 불량 유전자 제거로 치료할 분야가 많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생명윤리법의 개정을 원하는 과학자가 원하는 소통은 무엇일까? 유전자 교정을 방해하는 법을 교정하려하니 방해하지 말라는 점잖은 요구일까? 당신들 때문에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고통 받을 사람을 생각하라는 걸까? 황우석 전 교수의 언설이 떠오르는 순간이라면 지나친 걸까?

8월 3일 생명윤리학자 단 한 사람이 포함된 ‘유전자 교정 기술 도입 및 활용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향’ 토론회는 우리나라에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도입하도록 애를 쓴 생명윤리 관련 시민단체의 참여를 일체 요구하지 않았다. 그 토론회를 생명윤리학자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며 기획하지 않은 건 물론이다. 유전자 가위 연구를 희망하는 과학자들이 운집한 토론회는 차라리 어떤 부흥회장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부흥회 비슷한 토론회에 참여한 생명윤리학자의 구속력은 당연히 미약했다. 과학자가 불신되는 사회 분위기는 기술을 신봉할 뿐 부작용에 책임지거나 반성하지 않는 과학자가 자초했다고 지적했으나 유전자 가위 기술이 미칠 윤리와 환경의 위험성을 제기하지 않았다. 과학자의 오만은 지적했지만 과학의 비합리적 낙관주의를 비판하지 않았다. 나머지 참여자들은 과학자가 설계하는 가능성을 믿고 연구비를 넉넉히 투자해야 다른 나라에 밀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일관했기에 황우석 전 교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유방암 가능성을 높이는 유전자 보유 이유로 안젤리나 졸리는 예방적 절제수술을 받았다. 2013년 일인데, 그 여파는 예방적 유방절제 수술을 2년 만에 5배, 난소절제수술은 4.7배 증가하게 했다고 한 국내언론이 전했다. 한데 문제의 유전자는 평생 건강하게 사는 사람에게 더욱 높다는 사실은 생략했다. 유전자가 있다고 암으로 진행되는 게 아닌데,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제거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암을 발본색원할까? 이러다 노화나 치매 유전자를 찾아내겠다고 호언할까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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