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하류에 잠들어 있는 예술혼 불러일으킨다
금강 하류에 잠들어 있는 예술혼 불러일으킨다
  • 뉴스서천
  • 승인 2018.05.31 10:23
  • 호수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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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영화제’ 준비하는 김대현 감독
▲서천이 배출한 영화인들 초상을 전시한 앞에서 김대현 감독
▲기벌포 영화관의 서천이 배출한 영화인들 초상을 전시한 전시관 앞에서 선 김대현 감독

6월 15일부터 사흘간 장항 기벌포영화관에서 제1회 금강역사영화제가 열린다. 군산시에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 영화제는 군산의 두 영화관에서도 열리며 15일 개막식은 서천에서 열린다.

서천군은 지난 2월 군산시청에서 군산시와 협약을 체결하고 영화제를 준비해왔다. 1회 금강역사영화제 총괄 기획을 맡은 김대현 영화 감독을 29일 기벌포영화관 로비에서 만나 영화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서천에 내려온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장항읍 성주리로 주민등록까지 옮겨 서천군 군민이 됐다.

읍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했더니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한보따리 주더라구요. 그 봉투 아직도 다 못썼습니다. 이번 지방선거 투표도 장항에서 합니다

역사영화제의 개념을 물어보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흥행에 성공 천만관객 이상이 관람한 영화도 많습니다. 그러나 흥행을 목표로 하는 이러한 상업 영화 이면에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담론들이 숨어있기 일쑤입니다. 특히 지난 박근혜 정권 들어 역사 교육이 위기에 처하며 그 우려는 깊어졌습니다. 이러한 우려를 하던 영화인들이 모여 역사영화 발전소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김 감독은 역사영화 발전소에서 영화인들을 만나며 역사가 주는 교훈이 담겨있는 영화를 다시 불러내보는 영화제를 기획하기로 하고 서천을 찾은 것이다.

그는 경상도 태생이다. 이곳 서해안이 낯설지 않느냐는 물음에 금강이나 만경강 하구 지역은 영화 촬영지로 자주 와본 곳이고 전주영화제거 열리고 있어 자주 와본 곳이라며 전혀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전주는 6.25 전쟁이 끝나가던 무렵부터 한국 영화의 메카가 되었다. 일개 지방 도시에서 영화산업이 번성했다는 사실이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 뿌리는 군산에서 찾을 수 있다. 군산은 개항 이후 외래 문화가 어느 지역보다 풍성했다. 전북 최초의 공연장인 군산극장과 영화관인 희소관이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1949년에 영화 끊어진 항로가 군산에서 제작됐다.

한편 전주에서는 1925년에 개관한 제국관을 전라북도에서 인계받아 도립전주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운영하다 1957년에는 1000석 규모의 중앙극장이 개관해 오늘의 전주국제영화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1959년에는 비록 1회 행사로 그쳤지만 1회 전북영화상시상식이 열리기도 했다.

이처럼 1950, 60년대 한국 영화는 전북을 중심으로 절정을 맞았는데 이같은 전성기의 막을 연 영화인이 바로 서천 사람 이강천 감독이었다.

이강천 감독이 태어나 자란 곳은 종천면 석촌리이다. 이강천은 1939년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동경미술학교는 1885년에 세워진 학교로 1877년에 세워진 동경음악학교와 함께 미술과 음악 부문에서 일본 예술계를 대표하는 학교였으며 유명한 예술인을 다수 배출했다. 두 학교는 1949년에 합병해 동경예술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화가로 활동하며 영화에도 관심을 가졌다. 해방 후인 1948‘R.X.K 프로덕션이 제작한 영화 끊어진 항로에 출연했다. 이만흥 감독의 16mm 무성영화 끊어진 항로는 전북에서 처음 제작된 영화로 군산시를 포함한 전라북도 일원에서 촬영되었다. 이강천은 이 영화에서 미술 담당과 배우로 출연했다.

이러한 내막을 알고 나면 금강역사영화제가 서천과 군산에서 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금강역사영화제를 기획한 김대현 감독은 금강 하류지역에서 그동안 잠들어있던 예술혼을 영화로 다시 불러 일으키려 하고 있다. 이번 영화제의 마지막 상영 작품은 바로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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