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 / 삶의 터전 갯벌 ❼ 칠산어장의 변화(2)위도
■ 기획취재 / 삶의 터전 갯벌 ❼ 칠산어장의 변화(2)위도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8.09.06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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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흐름 동서방향에서 남북방향으로 바뀌었다”

간척사업으로 죽은 어장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추진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고기잡이 배를 볼 수 없는 텅빈 파장금항
▲고기잡이 배를 볼 수 없는 텅빈 파장금항

전라남도 영광 앞바다에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의 일곱 개 섬이 있다. 이곳에서부터 위도를 거쳐 고군산군도에 이르는 해역을 칠산바다라 하며 어장을 칠산어장이라 부른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 물이 만나는 칠산어장의 중심에 위도가 있다. 조기떼가 한국 서해 갯벌에 알을 낳기 위해 회유해 들어오면 남쪽 흑산도에서부터 위도, 연평도에 파시가 들어섰다. 2006년 만경강과 동진강을 통째로 막는 하굿둑인 새만금방조제는 인근 어장의 황폐화를 불러왔다. 뉴스서천 취재팀이 칠산어장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825일 위도를 방문 어민들을 만나보았다.

 

칠산바다 황금어장 위도

위도는 변산반도의 서쪽 끝 격포에서 서쪽으로 14km 떨어진 비교적 큰 섬으로 격포에서 하루 4회 정기 여객선이 운항한다. 섬의 형태가 고슴도치 모양이어서 위도(蝟島)라 한다. 위도는 본도 외에 식도(食島), 거륜도(車輪島), 정금도(井金島), 상왕등도(上旺登島), 하왕등도(下旺登島) 등의 유인도와 임수도(臨水島)와 형제도(兄弟島) 등의 크고 작은 무인도를 합쳐 30여개의 섬으로 되어 있으며 현재 15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고려조 이래 위도는 부안군에 속했으나 1896년에 전라도를 전라남북도로 나눌 당시 고군산군도와 함께 전남 지도(智島)군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고군산군도는 옥구군으로, 위도는 전라남도 영광군으로 속하게 되었다. 그 후 196311일 시행한 행정구역 개편에서 전라북도의 금산군이 충청남도로 편입되고 위도는 다시 부안군으로 편입되었다.

섬의 중앙에 망월봉(254m), 망금봉(241m)이 있으며 산지가 해안까지 이어져 농경지로 이용할 만한 평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예로부터 어업이 발달하여 주민들은 어업을 생업으로 삶을 이어왔다.

나일론 그물망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대량으로 고기를 포획할 수 있는 수단은 어전어업(어살)이었다. 위도에서는 고려조 이래 조선시대 후기까지 어전어업이 성행하던 곳이었다. 위도 일대는 갯벌이 넓게 발달했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서 어살을 설치하기에 유리했다. 어살을 만드는 싸리나무나 대나무를 조달하기에도 유리했다.

칠산어장의 중심에 놓여 있는 위도 인근해역에서는 조기를 비롯해 홍어, 병어, 회문어, 전어, 가오리, 갯장어, 삼치, 박대, 서대, 장대, 새우, 갑오징어, 갈치 등 각종 생선이 잡히고 대구와 청어도 잡혔다.

특히 조기가 많이 잡히는 3월에서 6월까지 파시가 들어서면 파장금 맞은 편에 있는 식도에까지 칠팔백 척의 고깃배가 빽빽히 들어서 닻을 내려 밤이 되면 일대가 불야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들이 잡는 조기의 양은 배 한척당 평균 50~60동이었다. 1동은1000마리이니 대략 이곳에서만 4천만 마리 이상의 조기가 잡혔던 셈이다.

조기잡이 철이면 파장금항에서는 고기를 매매하는 시장이 섰다. 이를 파시(派市)라 한다. 위도의 파시는 흑산도, 연평도와 함께 서해의 3대 파시 중의 하나이다. 파시가 들어서면 석유, 장작, 발동기, 각종 어구, 식량, 부식물, 각종 잡화 등을 파는 상인들이 들어오고 요릿집, 다방, 여관, 선술집, 이발관, 미용실, 도박장, 떡집 등이 빈터만 있으면 들어서 위도는 수만 명이 북적거리는 중도시로 변했다.

이곳에서 잡힌 조기는 대부분 영광군 법성포나 줄포를 통해 굴비로 가공되어 내륙으로 들어갔는데 영광굴비의 명성은 여기서 나왔다.

 

간척사업이 불러온 바다 환경 변화

▲뻘이 2m가 쌓인 대리 포구 갯벌. 멀리 풍력발전단지 풍차가 보인다.

▲뻘이 2m가 쌓인 대리 포구 갯벌. 멀리 풍력발전단지 풍차가 보인다.

위도 파장금항에서는 고기잡이 배가 들고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위도 띠뱃놀이 전수관이 있는 대리마을에 가서 어민들을 만나 어장 상황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주민 강대식씨는

옛날에는 조류가 동서방향이었는데 남북방향으로 바뀌었어요. 새만금방조제로 물길이 완전히 완전히 달라졌어. 밀물 때 물이 올라오다가 왕등도 밖으로 돌아서 먼 바다로 가버려라고 말했다.조류의 흐름도 약해서 펄이 쌓이기 시작했다. 대리마을 앞 갯벌은 옛날에는 운동장이 좁은 대리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열렸었다고 한다. 축구를 하고 놀던 갯벌에 펄이 2m가 쌓였다고 말했다. 해저에 쌓인 펄로 갯벌은 죽뻘로 변했고 산란장 기능을 상실했다. 어민들은 더 큰 배를 마련해 먼 바다로 나가보았지만 빚만 늘었다.

1991년 영광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부터 어장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위도 아래로 영광 앞바다까지는 영광사람이나 고창 사람들, 위도 사람들 다 함께 어로작업을 하는 어장이다. 그런데 영광이나 고창에서는 많은 보상을 받았지만 위도 사람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거주지가 영향권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이유였다.

새만금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보상을 받지 못했다. 새만금 보상금은 2차 보상 때 방조제 밖 20km까지 사는 거주지 중심으로 보상을 해주었다. 새만금사업으로 인한 위도 어민들의 피해는 막대한 것이었지만 20km 밖에 있다 하여 어업피해 보상을 받지 못했다.

2003년 봄 정부가 고준위핵폐기장 건설을 위해 전국의 바닷가 마을을 들쑤시고 다닐 때 위도 주민들은 가구당 5억원씩 보상받는다는 말을 믿고 고준위핵폐기장 유치에 나섰다. 이후 부안 군민들의 반핵투쟁이 벌어졌다.

현재 위도에서 어선어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식도에 멸치잡이 어선 몇 척이 남았을 뿐이라 한다. 생계대책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어선 감척과 함께 인구도 줄어 1990년대 초 3000여명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띠뱃놀이 전수관.
▲띠뱃놀이 전수관.

​​​​​​​띠뱃놀이 전수관에 들어가 보았다. 칠판에는 에헤용 소리의 가사가 적혀 있었다.

빌어보세 빌어를 보세 고기잡이를 빌어보세
조기를 잡자 조기를 잡어 칠산 앞바다 조기를 잡어
청어를 잡자 청어를 잡어 위도 군산 청어 잡세
돌아보세 돌아를 보세 에헤용 줄 메고 돌아보세

조기를 건져올리던 칠산어장 중심에 정부는 현재 대단위 풍력발전단지를 계획하고 있다. 어민들의 반대로 협상이 이루어져 시험용으로 20기를 세우기로 하고 현재 11기를 건설 중에 있다. 추후 2, 3차에 걸쳐 980기까지 늘릴 계획이라 한다.
 

▲칠산어장 중심에 들어서고 있는 풍력발전단지
▲칠산어장 중심에 들어서고 있는 풍력발전단지

<허정균 기자>

 

주민 인터뷰

이제라도 방조제 군데군데 뚫고
연육교를 만들어 물길을 열어 주면
해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좋아질 거예요

▲위도 대리에서 만난 주민들. 왼쪽 끝이 강대식씨
▲위도 대리에서 만난 주민들. 왼쪽 끝이 강대식씨

위도 대리에서 어업에 종사하며 ()위도지역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강대식 어민(아래 사진의 왼쪽)을 만나서 새만금사업과 영광핵발전소, 해상풍력발전기 건설 등으로 인해 주변 해양환경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 새만금사업으로 인해 위도 연안의 해양 환경변화가 있습니까?

= 새만금 방조제를 막고 나서 해류흐름이 민물 때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지 못해 방조제와 육지에 부딛혀서 왕등도 방향인 바깥으로 나가버려요. 그러다 보니 모래가 쌓야야 하는데 썩은 뻘만 쌓여요. 모래가 바깥으로 유실돼 버려요. 꽃게나 물고기가 모래에 산란하잖아요. 뻘에다 산란하지 않아요. 어떤 교수도 우리 말과 같은 말을 하데요. 그러다 보니 멀리 빠져나간 모래 바탕에다가 산란을 해요. 물고기 등이 바깥으로 나간다 말이에요. 바깥에서 육지로 가까울수록 뻘이 많이 쌓여 있어요. 위도 연안은 모두 뻘로 쌓여 있어요. 메탄가스 냄새가 나는 죽뻘이요. 지주식 김 양식도 했는데 지금은 안돼요. 우리가 어릴 때는 갯벌에 나가서 축구를 할 정도로 단단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뻘이 쌓여서 들어가지도 못해요. 시간이 더 가면 갈수록 어획량은 감소할 거에요. 그러니 이제라도 방조제 수문을 열고 방조제 군데군데를 뚫어서 연육교를 만들어 해수유통이 되도록 물길을 열어 주면 해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점차적으로 좋아질 거예요.

​​​​​​​- 새만금사업 추진 당시에 어떤 입장이었나?

= 새만금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때 농어촌공사를 찾아가서 우리 주민들은 공사를 하지 말라고 했어요. 주민들이 전라북도청에 입주해 있던 새만금사업 추진 사무실로 찾아가서 반대 입장을 전달했어요. 당시 노태우씨가 공사를 강행하게 되어 주민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새만금 방조제 막고 나서 여러 가지 피해가 있어서 당시 국회 농림해수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부안 지역구 국회의원 김춘진씨에게 피해를 호소했지만 아무런 댓구도 없고요. 새만금을 계속 개발하겠다는 목적에만 관심이 있지 환경을 살리는 일은 0.1프로도 없어요. 공사 시작 당시 농어촌공사가 준 피해보상은 1, 2, 3차 공정율에 따라 보상을 주겠다고 해 놓고는 1차로 몇백만원씩을 주고 끝내 버렸어요.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법적 소송을 걸려고 했다가 정부와 소송을 하려면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포기했어요. 민사소송이라서요. 하는 일인 어업에 그냥 매진하기로 하고 포기했어요.

- 영광핵발전소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 우리나라 교수와 일본에서 온 교수들에게 용역을 해 가지고 항공에서 내려다 본 온배수 확산에 대해 종합적으로 연구해서 산업자원부가 발표했어요. 그 내용대로 고창 주민들은 보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당시 위도는 배제를 당했어요. 대학 교수들이 보고서를 잘못 썼어요. 원래 바닷물의 조류가 영광으로부터(고창을 지나) 부안으로 해서 위도로 돌아나가는 것인데 연구용역에서는 영광에서 고창까지만 왔다가 바로 빠져 나간다고 했어요. 대학교수들이 실수를 한 것이에요. 그래서 발전소로 가서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안줘요. 그래서 고창피해대책본부로 가서 달라고 했더니 주더라고요. 산업자원부로 가서 다시 용역을 해달라고 했어요. 보상 달라고 안하겠다 하니까, 검토해 보겠다고 해놓고 아직도 검토를 하지 않고 있어요. 올해도 산업자원부를 갔어요. 왜 여기를 배제했겠어요. 권역 단위로 보상을 주는 것이 아니고 행정구역상 도 단위로 나눠요. 발전소에서 안마도가 24Km떨어져 있는데 피해범위로 포함시켰잖아요. 그런데 여기 위도까지는 21km 떨어져 있어요. 3Km나 적게 떨어져 있는데도 보상에서 빠져 있는 것을 어떻게 믿겠어요. 형평성이 없어요. 이게 맞는 말이냐고요. 국회 청문회까지 해서 공개해 달라고 했는데도 안더라고요. 모든 것을 접고 꽃게 잡는 것에만 신경을 써요. 생계수단이니까. 국민이라 힘이 약해요.

- 고창과 부안 위도 사이에 해상풍력발전기 건설을 진행하고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고, 주민들이 어떤 대응을 했습니까?

= 해상풍력 발전기 건설 공사 중단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걸었는데 기각을 당했어요. 그리고 지난해 1224일 산업자원부를 방문했을 때 원천적으로 하지말라고 요구했어요. 그랬더니 실증단지 이것만은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다고 하데요. 실험적으로 가동을 해 보고 주민들에게 좋지 않게 영향을 줄 것 같으면 추가로 건설 공사를 안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전남 도지사로 이낙연씨(현 국무총리)가 출마할 때 해양풍력발전기 건설을 공약을 했다는 거예요.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공약 사업을 중단시키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지금은 풍력발전기 11기가 건설 중에 있어요. 예산 다 세워서 공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만하라고 하겠어요.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없고요. 2단계, 3단계에는 980기가 들어간데요. 원래는 1200기가 들어간다고 공사 계약이 됐던 거예요. 우선 20기 공사는 실험적으로 하는 거예요. 즉 실증단지만 건설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2단계, 3단계까지 들어가면 우리 위도와 5km, 그러니까 3마일 정도 밖에 떨어져 있는데 이곳은 다 우리 어장터에요. 지금은 영광 쪽으로 붙여서 공사를 하고 있어요. 2단계, 3단계까지 들어서면 부안하고 고창 사이로 들어서는 것이기에 어장이 없어져 어업을 하나도 못해요. 공사를 하려면 모두 이주시켜 달라고 했어요. 생계수단이 없어져 버려요. 조금씩 조금씩 수입이 줄다가 결국에는 우리 세대보다도 다음 세대에서는 어떻게 이 지역을 지킬 수 있을까 우려가 되요. 해상풍력측이 우리 위도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 주겠다고 해요. 예를 들어 해저케이블을 이용해 전기를 공급해 주겠다고 하는데 현재 사용하는 한전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복합적으로 생각하면 이 해저케이블 사업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새만금사업, 영광핵발전소 온배수 배출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해상풍력까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면 환경을 망가뜨리게 되어서 우리 지역민들은 살 수가 없어요. 우리 주민, 도민 힘으로 더 이상 못하게 해야 해요.

 

이런 예기를 듣고 있던 다른 어민들도 맞다면서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위도는 지금 새만금사업과 영광핵발전소, 해상풍력발전기 건설로 인해 해양환경이 변함에 따라 심각한 어업 피해를 보고 있었다. 더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새만금 방조제의 해수유통을 확대하고, 영광핵발전소 가동 중단과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엄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일방적인 공사가 강행되고 있어서 어민 생존권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해양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있음을 올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연구자들도 보다 객관적이고 엄밀한 조사를 통해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어민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과연 연구자들이 돈을 주는 사업자와 정부의 편이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주용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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