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기쉬운 GMO 이야기/(11)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몬산토 ❶
■ 알기쉬운 GMO 이야기/(11)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몬산토 ❶
  • 뉴스서천
  • 승인 2019.05.02 14:59
  • 호수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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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에서 PCB, 고엽제, 아스파탐까지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몬산토 본사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몬산토 본사

​​​​​​​몬산토는 신젠타, 듀퐁과 함께 세계 시장을 주도하며 GMO 작물 종자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이 회사가 처음 설립되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알아본다.

미국의 미시시피강 본류가 일리노이강, 미주리강을 받아들이며 곡물 유통의 중심이 된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교외 크레브코어에 본사가 있는 몬산토는 현재 전 세계 60개국에 400개 이상의 연구시설을 두고 있다. 그 출발은 19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몬산토는 1901년 말타 기사단(Knights of Malta)의 회원이며 제약업계에 종사하던 존 프란시스 퀴니(John Francis Queenie)라는 사람이 창립했다. 몬산토라는 이름은 그의 부인의 이름(Olga Mendez Monsanto)에서 따왔다.

이 회사의 첫 제품은 코카콜라가 인공 감미료로 만든 화학물질인 사카린이었다. 사카린은 미국에서 1911년 사용이 규제되었지만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설탕이 부족해지자 제한 조치가 완화되었으며, 1970년대에 과도한 사카린을 먹인 쥐 실험에서 방광암에 걸린다는 발표로 안전성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1920년대에 몬산토는 화학물질과 약물 생산을 확대하여 세계 최대의 아스피린 생산 업체가 되었으며, 이어 폴리염화비페닐(PCB, polychlorinated biphenyls)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PCBs는 화학 산업의 기적으로 여겨졌다. 고온에서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 절연체로서 윤활유, 열 전달 유체, 변압기와 축전기에서 내화 유전유체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이 물질이 생식 및 면역계의 질병을 유발하는 강력한 독극물로 생명체에 해롭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생산과 이용이 제한되었다. 나중에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몬산토는 치명적인 결과를 잘 알고 있었지만 PCB 판매로 인한 높은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숨겼다.

1930 년대 몬산토는 세탁용 세제, 비누, 산업용 청소용 제품, 합성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을 비롯하여 최초의 하이브리드 옥수수 종자를 생산했다. 그들은 모두 유독했다.

몬산토는 나치 독일의 주요 화학 기업인 IG Farben (바이엘 - 아스피린 생산 중)과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며, 그 주요 제품은 사이클론 가스(Cyclone-B)였다. 두 회사는 공동으로 아스파탐 (aspartame)을 개발했다.

1940년대에 몬산토는 원자폭탄 제조를 목적으로 한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우라늄 연구에 참여했다. 다이옥신이 함유된 농약을 개발함으로써 살인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몬산토가 식품 산업에서 다이옥신의 광범위한 사용을 숨기고 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1950년대에 월트 디즈니와 밀접하게 연결된 몬산토는 디즈니의 투머로우스 랜드 파크 (Tomorrow's Land Park)를 위해 여러 가지 볼거리를 만들어 화학물질과 플라스틱에 대한 선전 효과를 노렸다. 디즈니의 미래의 집 (House of the Future)’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해되지 않는 독성 플라스틱으로 지어졌음이 밝혀졌다.

1960년대 몬산토는 화학범죄 파트너인 DOW Chemical과 함께 미 육군이 베트남을 정복하기 위해 사용한 고엽제 에이전트오렌지(Agent Orange dioxin)을 생산했다. 법원에서는 몬산토가 미국 정부와 계약을 체결할 때 에이전트 오렌지의 사용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밝혔다.

1970년대 몬산토의 파트너인 지디 시얼리(GD Searle)은 아스파탐을 안전한 식품으로 만들기 위해 작업을 벌였다. 아스파탐은 페닐알라닌과 아스파르트산을 합성해 만드는데 사실상 독극물이나 다름없는 물질이다.

1965년 미국의 화학자 제임스 슐라터라는 사람이 위액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을 연구하던 도중 우연히 발견한 물질인 아스파탐은 열을 가하면 단맛이 줄어드는 특성 때문에 주로 차갑게 먹는 청량음료에 들어간다.

이러한 아스파탐은 우여곡절 끝에 196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지만 안전성을 검사한 많은 동물 실험에서 뇌종양이 불규칙하게 발생했다. 위스콘신 대학의 실험에 의하면 우유에 아스파탐을 첨가하여 원숭이 7마리에게 먹인 결과 300일 만에 5마리가 발작을 일으켰으며 1마리는 죽었다. 다른 여러 연구에서도 부작용이 확인돼 1975년에 결국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이 취소됐다.

이후 개발회사인 지디시얼리(G. D. Searle)사는 정치적 해결을 모색해 1977년 미국의 신보수주의 세력(네오콘)의 중심 인물로 알려진 국방장관 출신의 도널드 럼스펠드를 최고 경영자로 영입해 새로운 연구 자료를 제출하면서 로비를 벌였으나 1980년도에 또다시 만장일치로 승인이 부결됐다.

그러나 1981년 도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럼스펠드는 다시 레이건 행정부의 각료로 입각했으며 레이건 행정부는 FDA 국장을 경질하고 펜실베니아대학의 아서 헐 헤이즈를 신임 국장에 앉혔다.

지디시얼리사는 기다렸다는 듯 시판 승인을 다시 신청했고 그 해 7월에 시판보류가 해제됐으며 1983년에는 음료에까지 사용 범위가 확대됐다. 1985년 몬산토는 이 회사를 인수하여 ‘Nutra Sweet Company’라는 자회사로 전환했다.<다음호에 계속>
​​​​​​​<참고자료:위키백과 러시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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