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또 하나의 예술
간판은 또 하나의 예술
  • 최현옥
  • 승인 2003.11.07 00:00
  • 호수 1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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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맛이 넘치는 간판문화를 통해 윤씨는 지역 이미지를 높이고 싶다
네온 간판을 비롯해 상가를 눈에 가장 잘 뛰도록 시각적 현기증마저 일으키는 지역의 화려한 간판사이 목판으로 만든 칠이 벗겨지고 허름한 ‘새마음사’ 간판이 있다. 이 간판은 마치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촬영 소품 같지만 과거의 기억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은 점포 주인의 욕구가 숨쉬는 듯 하다. 허름한 간판이 붙은 5평 남짓한 가게 안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주인 윤일하(67·서천읍)씨보다 그와 20여 년을 함께 해온 책상, 커다란 국어사전, 색 바랜 옥편 등이 먼저 방기며 과거의 명성을 이야기 해준다. 간판에 쓰이는 글자 하나, 하나 직접 손으로 쓰며 간판 제작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었던 윤씨.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그의 손재주를 깨우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음… 그게 언제였더라. 응! 군대에 갔을 때지, 차트사를 뽑는 다는 말에 과거 경력을 살려 지원을 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 때부터 간판과 운명을 함께 하기 시작했어”
간판과 오랜 시간을 살아온 윤씨, 과거로의 여행은 더디게 시작했다.
컴퓨터의 출현으로 과거 수 백번의 수작업을 요구하던 것들이 편리하게 바뀌어 버렸고 펜글씨 재주가 있어야 가능했던 일은 기기 조작 능력이 뛰어나면 된다. 그래서 지금은 그가 만든 간판은 찾기 힘들 정도로 모두 사라진 상태다.
“과거에는 간판을 하려면 만물박사가 돼야했어. 판이 나와있는 것이 아니라 목공소에 가서 나무도 짜고 거기다 페인트 칠, 그림 넣기 등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기술과 정성이 필요했으니까”
군대 제대 후 군청 기획 예산계에서 임시직으로 10여년 간 차트와 현황판을 만들어왔던 윤씨는 지난 80년대 사

업체를 냈다. 시작은 인쇄업으로 출발했으나 그의 솜씨를 아는 사람들은 현수막, 입간판, 간판 등 작업의뢰를 했다.
“참 요즘 간판은 맛이 없단 말야. 맛과 멋이 있어야 하는데…”
작업환경이 편리해진 만큼 결여된 것이 많은 듯 하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윤씨는 자유롭게 점포의 특성을 고려해 간판을 만들던 시절이 좋았다고 한다. 비록 현대적 감각은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글씨 하나에 정성을 들였으며 나름의 멋을 부린 맛있는 간판을 만들었다는 것.
“지금은 참 손쉬워 져 하루에 간판 간단한 것은 4개까지 만들 수 있는데 과거에는 얼마나 정성과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알아. 간판 하나 만드는데 보통 3∼4일은 걸렸지”
간판의 역사책인 그는 소재가 다양해지고 고급화, 현대화 된 현재의 간판과 비교할 수 없지만 과거 함석, 광목천, 나무 등에 페인트로 칠하던 것이 어제일 같다.

“현수막 의뢰가 하루에 30∼40장정도 들어오면 하루 종일 손이 열 개라도 부족했지. 그러나 간격 조절 실수라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 참, 그때 나도 잘 나갔는데…”
지금은 과거처럼 일거리가 없지만 과거 ‘새마음사’ 하면 실력에서 인정받았다는 윤씨는 스스로 생각해도 흐뭇하고 대견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 여러 업체가 경쟁하면서 상도덕 마저 지키지 않으려 하는 업자들 때문에 안타깝다”는 윤씨는 적어도 예를 지키는 상인이 되길 소망한다.
또 과거에는 간판을 하나 만들더라도 환경을 많이 고려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이 역시 안타깝다.
“아직까지 손을 멈추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는 윤씨는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도안 후 작업은 다른 곳에 의뢰한다. 그러나 과거 간판 만들던 것을 보여준다며 양면지에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은 아직 녹슬지 않은 그의 손재주를 보여줬다.
“광고업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예술이라 멋과 맛이 숨쉬는 작업을 해야한다”는 윤씨는 ‘새마음사’ 간판을 다시 한번 쓰다듬어 본다. 세월에 늙어버린 윤씨처럼 점포도 그와 같이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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