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中庸20장에 삼지三知가 있다. 성인은 이미 알고 태어나며<생이지지生而知之>, 현인은 배워서 알고<학이지지學而知之>, 범부는 죽어라 공부해서 안다<곤이지지困而知之>. 공자는 논어 계씨편에서 말한다. “날 때부터 이미 알고 나온 사람을<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 최고라 하고<상야上也>, 공부해서 아는 사람을<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 그 다음이라 하고<차야次也>, 죽을 고생해본 뒤에 깨닫고 공부하는 사람을<곤이학지困而學之> 또 그 다음이라 하고<우기차야又其次也>, 젊은 날 공부 안 해서 죽을 고생 했음에도 그럼에도 여전히 공부하지 않는 자들을<곤이불학困而不學> 백성들 중에서 바닥이라고 한다<민사위하의民斯爲下矣>”
삼지三知에서 공자는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를 말할 때 지知와 지智를 구분없이 동일한 지知를 사용했다. 지知와 지智는 다르다. 지知는 근본지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의 앎으로 이미 나기 전부터 알고 있다는 첫 알음의<生而知之> 선득지先得知이다. 그러나 지智는 지혜라는 말로 날마다 공부해서 알아진 또는 생활의 경험이나 체험을 통해서 알아진<學而知之困而知之> 지智다. 이를 후득지後得知라 한다<陸九淵 無極序說>.
생이지지라는 말은 신神의 영역이다. 공자는 일생을 살면서 말하지 않는 부분이 몇 개 있는데 신神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으며<자子 불어不語 괴력난신怪力亂神. 논어論語술이편述而篇>, 죽은 다음날 아침에 있을 나의 자화상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계로문사귀신季路問事鬼神 미지생언지사未知生焉知死.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12>. 그런 그에게 삶이란 공부의 연속이다. 스승의 그런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제자 자공은 공자 사후 6년간의 시묘를 살면서 스승 공자의 말을 논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면서 논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로 공부하라는 학學으로 시작을 한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은 공부하는 일이다. 라는 말이다. 인간사에서 공부에 관한 한 공자를 따를 자가 없다. 그는 스스로를 “겨우 열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도<십실지읍十室之邑> 충성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필유충신必有忠信> 그러나 나처럼<여구자언如丘者焉>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부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 論語公冶長27문장>”라고 말했다. 이 문장만 봐도 공자는 자신이 공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묻어난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지식이 태어날 때부터 안 것이 아니라<아비생이지지자我非生而知之者>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얻어진 앎이라고 말한다<호고민이구지자好古敏以求之者. 논어술이편述而篇7-19>.
진秦 효공孝公 영거량 때 재상을 지낸 상앙의 말 중에 “늦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할게 아니라<물공만시勿恐晩始> 하다가 중단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며<불습위외不濕爲畏> - 중략 - 잊지말아야 할 것은<득언得言> 배웠음에도 그 배운 것을 잊었음에도 다시 배우지 않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는 것이다<학망학부재학상우學忘學不再學上愚>.
공부는 그것을 실천에 옮겼을 때 그친다<학지어행지이지의學至于行之而止矣. 순자荀子유효편儒效篇>. 공부 안해 뼈아프게 후회하는 청춘에게 했다는 북송北宋 때의 학자 사마광의 말은 아무리 읽어봐도 진짜로 뼈아프게 읽힌다.“뼈아프게 들리겠지만 그건 네가 잘못 살아온 거야<골문미등과오매愲聞未登科誤邁>”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