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 / 천둥소리만 요란하다 그친 아침에
■모시장터 / 천둥소리만 요란하다 그친 아침에
  • 칼럼위원 정해용시인
  • 승인 2019.06.19 13:34
  • 호수 9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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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요란한 우렛소리에 잠이 깼다.

쿵쾅소리가 들렸으니 쏴아소리가 들리면 틀림없이 소나기다.

그런데 이상하다. 소나기 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천둥 벼락 소리는 제법 요란했는데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보슬비만 찔끔 내렸나보다. 그 소리마저 곧 잦아든다. 예보됐던 소나기는 이렇게 끝나나 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이런 날씨는 무척 짜증스럽다. 아예 아무 징조도 없이 메마른 날씨라면 가물어 그렇거니 할 터이다. 그런데 소란스럽게 천둥 벼락 소리가 들리면서 변죽만 울리다 마는 이런 날씨가 반복되면 짜증 지수가 올라간다. 우선 후텁지근 습도가 올라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거기에다 마음 놓고 외출하기도 그렇고 외출을 포기하고 눌러 앉기도 뭣한 애매모호함에 기분도 개운치 않다. 그뿐인가. 소중한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이런 날씨는 요즘 우리 인간세상도 똑 닮았다.

적폐청산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지 몇 년째다. 만연한 부정부패에 저항하여 부패정권을 몰아내자고 많은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우레 같은 시민의 함성, 폭풍 같은 시민의 분노가 고집스럽게만 보였던 무능한 권력을 몰아냈다. 그 민심은 곧 천심이었다. 이 여세를 몰아 그동안 저질러진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자는 것이 민심의 바램이었다. 시민들은 적폐청산을 외치는 정파에 그 힘을 몰아주어 새 정권을 탄생시켰고, 그들에게 정당한 법절차에 의한 심판을 일임했다. 그 정권 아래서 벌어졌던 의혹사건들의 진상을 소상히 밝혀 답답했던 속을 풀어줄 힘과 권리를 위임하였다.

그로부터 2년 반이 흘러갔다. 과연 그로부터 시원한 소낙비는 내렸던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우선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그들의 임기 중 과오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속되었다. 그들의 최측근 몇 사람도 구속재판을 받았다.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후속 조치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뿐이다. 적어도 국민이 체감하는 후련함은 기대치에 비하면 아직도 문지방을 넘나드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방 청소를 하겠다고 들어와 문지방에서 손닿는 정도까지만 훑고 마는 건 아닌가. 집권 기간의 절반이 지나도록 청소가 제대로 시작됐다는 기미를 느끼기가 어렵다. 한바탕 후련한 폭우가 쏟아져 오래 묵은 쓰레기를 쓸어내리고 가능하면 적폐의 뿌리까지 파헤치기를 바랐던 국민들로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천둥소리만 요란하다 제풀에 지쳐버리는 날씨처럼 짜증스럽다.

이런 와중에 누구는 누구나 먹는 나이를 핑계로 가석방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고,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을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소위 태극기 노인부대들의 위세는 광화문 광장을 다 점령할 수준으로 왕성해졌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를 미화하고 촛불정신을 폄하하는 거짓 뉴스를 퍼뜨리며 여론 조작에 나섰는가 하면 공공연히 공권력을 협박하며 저항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전쟁 70년 만에 이루어낸 북-종전선언 협상의 성과마저 이들에 의해 비웃음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마땅한 제재를 못하다니. 국민이 눈에는 준법절차의 신성함이기보다는 정치적 무능으로 느껴질 뿐이다. 심판의 그물코가 어찌나 엉성한지, 정작 영악한 기회주의자들은 이번에도 다 빠져나가는 게 선연히 다 보인다. 이걸 보면서도 놓치고 앉아 있으니 국민은 속이 터지는 것이다.

마침 이런 속에서도 그동안 적폐청산에 팔 걷어 부치고 고군분투해온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검찰청장 후보로 지명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국민이 기대하는 몇몇 기대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정신을 치열하게 가다듬어 오랜 부패, 거짓 역사의 뿌리를 뽑고 새로운 시대의 초석을 다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지켜보겠다.

정해용 [시인, 칼럼위원]

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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