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노魯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과인은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집을 옮기면서 아내를 잊어버렸다고 들었는데<과인문망지심자寡人聞忘之甚者 사이망기처徙而忘其妻>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하니 공자 왈. 그보다 더한 경우도 있는데 임금 된<爲君> 자와 부모 된<爲親> 자와 자녀 된<爲子> 자로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忘己> 사람들입니다. 애공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공자가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말한다.
“옛날 하夏나라의 걸桀왕이나 상商나라의 주紂왕 같은 자들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백성을 돌아보지 않고 폭군 노릇 한 것이 첫 번째 자신을 망각한 것이고 부모이면서 가정을 돌아보지 않음이 두 번째 자신을 망각한 것이고, 자식이면서 공부하지 않음이 세 번째 자신을 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누구는 나라를 잃는 것이요. 누구는 가정을 잃는 것이요. 누구는 자기의 몸을 잃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공부하지 않아서 오는 폐단입니다<차위부독공지심폐의此謂不篤工之甚弊矣>”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 왕숙王肅이 편찬한 공자가어孔子家語현군賢君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조조의 증손녀 사위 혜강이 풀어 말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많은 것을 함의하지만 세 번째 대목에서 말한 ‘자식이면서 공부하지 않음’이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부하지 않고 세상을 살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꽤 큰 용기 같지만 자칫 하다가는 만용을 넘어선 어리석음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끔이지만 꽤 잘나간다는 말발깨나 있다는 부모들 사이에서 하는 말 중 하나가 “초등학교와 중학교과정은 조금 느슨하게 공부해도 괜찮아. 공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해도 대학교 입시쯤은 문제없어”
듣기에 따라서는 무척이나 야무진 소리임에는 분명하나 이런 말이 통용되던 시대는 아마도 이해찬 1세대라고 불리는 그 시대에는 이런 말이 먹혔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참혹했다는 것을 그 시대 뉴스보도를 통해 이미 증명된 사실들이다. 사람들은 그런 결과에 대해 이렇게 입방아를 찧는다. 공부할 때 안 해놓고 이제 와서 누굴 탓하는 거야. 결국 공부 안한 제 잘 못이라는 거다. 사람이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다. 그러나 현실은 공부 안한 자신들을 탓하며 이렇게들 산다.
대한민국에는 암묵적으로 세 개의 대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대와 비서울대 그리고 말하기도 그악스럽다는 지잡대가 그것이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이 있다. “어려서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사는 게 수월하다”라는 말이다. 꼭 그런 거는 아니지만 대체로 수긍하는 쪽이다. 입으로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몸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몸이 증명하고 있는 거다.
“영웅은 공부하지 않으며<雄非篤工> 시경이나 서경 따위는 더욱 안 본다<시서부독詩書不讀>”라면서 큰소리쳤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項羽는 해하전투垓下之戰에서 패한 후 오강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고작 이십대 후반이다.
이 처럼 역사는 늘 우리에게 공부하지 않은 인생의 끝을 종종 보여주기도 한다. 동양의 잠언이라는 대학 책 첫 네 글자는 대학지도大學之道이다. 대학지도大學之道의 뜻은 크게<大> 되려면 배워야<學> 하는데 거기에는<之> 도道, 즉 실천하라는 말이다.
강태공은 “사람이 날 때부터 배우지 않으면<인생불학人生不學> 마치 불빛 없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여명명야행如冥冥夜行>”고 말했다. 그렇다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인불가이불학人不可以不學상산象山육구연陸九淵> 고등학교 때는 등급으로 나누고 기껏 대학에 들어왔더니 서울대 비서울대 지잡대로 로 나누고 사회에 나왔더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다. 생각대로 살고 싶은데 세상은 자꾸만 사는 대로 생각하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