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백두산, 다시 폭발하나?
■ 특집 / 백두산, 다시 폭발하나?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9.12.27 07:21
  • 호수 9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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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년 백두산 분화는 서기 이래 최대 화산 폭발

재분화 위해 에너지 비축 중…북한, 지진청 두고 면밀 관측
▲백두산 천지 위성사진. 북쪽 2/5는 중국, 남쪽 3/5은 북한이 점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 위성사진. 북쪽 2/5는 중국, 남쪽 3/5은 북한이 점하고 있다.

지난 19일 기벌포영화관을 비롯 전국의 개봉관에서 영화 백두산이 상영되면서 백두산이 다시 분화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최대 고민은 백두산이 대폭발을 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며, 백두산 근처에서 핵실험을 했던 북한은 지진청이라는 관청을 두고 외국 화산학자의 도움을 받아 백두산의 화산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두산은 어떤 산이며 대폭발을 다시 할 것인지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이 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림원),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와 공동으로 개최한 4회 한영 리서치 콘퍼런스(UK-Korea Research Conference)’가 지난 530일 영국의 런던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이례적으로 김혁 북한 지진청 분과장이 참석했다. 그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백두산 주변에서 모두 10회 지진이 났다. 땅속 민감도가 증가하고 있다땅속의 밀도, 중력과 자기장 변화 등을 면밀히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소식이 국내에 보도되며 관련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백두산 분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동해를 건너온 화산재

▲일본 북부 지역을 두덮은 946년 백두산 분화
▲일본 북부 지역을 두덮은 946년 백두산 분화

백두산이 과거에 대폭발을 한 화산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사람은 일본 화산학의 제일인자 마치다 히로시이다. 그는 일본 규슈섬 가고시마 남쪽 해저에서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전 일본을 덮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람이다. 또한 일본 북부의 도와다 화산이 915년에 분화했음을 밝혀냈다.

그가 일본 홋카이도에서 화산재 퇴적층을 조사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일본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화산재와는 성분이 다른 화산재를 발견한 것이다. 이 화산재에는 일본에서는 보고된 적이 없는 알칼리장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동해로 눈을 돌렸다. 대륙에 가까울수록 이 화산재 지층은 더욱 두껍게 나타났고 결국 백두산으로 수렴되었다. 그는 1980년 논문 동해를 건너온 화산재를 발표했으며 백두산 폭발로 화산재가 홋카이도를 비롯한 일본 북부 지역에 쌓여 있음을 밝혔다.

그런데 이 백두산 화산재 지층은 915년에 분출한 도와다 화산재 지층 바로 위에 쌓여 있음에 주목하고 백두산 폭발이 발해의 멸망을 불러왔다는 가설을 내용으로 하는 논문 화산의 분화와 발해의 쇠망1994년에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가설은 학계의 반론에 부딪쳤다. 926년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했음이 사서에 분명하게 기록돼 있음을 무시한 논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영국 화산학자들의 백두산 조사 활동

▲946년 백두산 대폭발 모습을 상상해 그린 모습(소박사TV)
▲946년 백두산 대폭발 모습을 상상해 그린 모습(소박사TV)

백두산 주변에서는 2000년 대 이후에만 화산형 지진이 3000번 이상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를 조사해 현재 백두산의 상태를 분석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없었다.

북한 당국은 북경에서 활동 중이던 <사이언스>지 책임 편집자에게 서구의 과학자를 소개해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이에 사이언스지 책임 편집자는 북한의 부탁을 들어주어 영국 캠프리지대 교수 클라이브 오펜하이머를 소개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화산 전문가이다. 오펜하이머는 런던대 제임스 하몬드 교수에게 백두산 공동연구를 제의했으며 이들은 2011년 북한에 입국 현재까지 조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지진계 네트워크를 설치해 마그마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일과 마그마의 배관 구조를 알아내는 일, 과거에 백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히는 일 등이었다.

이미 중국은 자국측 사면에 지진계를 설치하고 조사하고 있었으나 북한에는 이를 면밀히 측정할 지진계가 없었다. 두 영국인은 2013년에야 북한쪽 사면에 지진계 6기를 설치할 수 있었다. 잠수함 탐지기 등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어 반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다. 이들은 현재 북한 과학자들과 함께 백두산의 심장 박동 소리를 모니터링 중이다.

 

서기 이래 최대의 화산 분화

▲계곡을 따라 돌진하는 화쇄류
▲계곡을 따라 돌진하는 화쇄류

두 영국인 화산학자의 조사활동에 힘입어 1000여 년 전 대폭발을 일으켰던 백두산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백두산 946밀레니엄 분화의 다중 연대 측정>이라는 논문을 201612월에 발표했다.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이들은 탄화목이 화쇄류(고온의 화산재와 증기의 혼합물)에 매몰된 연대를 측정해 서기 946년에 폭발했음을 밝혀냈다. 또한 이태리 폼페이를 매몰시킨 베수비오 화산 폭발의 50배 규모였으며 화산폭발지수(VEI) 7의 규모였음을 알아냈다. 이는 1783년 아이슬란드 라키산의 분화(규모 6)보다 10배 규모였다. 라키산 화산 폭발은 기후 변화를 가져와 서유럽에서 연이은 흉작이 이어졌으며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946년 백두산 폭발은 2000년 이래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산 폭발이었다. 그래서 밀레니엄 분화라고 부른다.

북한의 지하 핵실험이 백두산 분화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를 한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의 저자 소원주 박사는 그가 운영하는 유투브 채널 소박사 TV’에서 946년 백두산 대폭발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서기 946년 겨울에 백두산이 폭발했다. 화산의 폭발음을 명동이라고 하는데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나 일본의 수도 교토에서도 그 폭발음을 들었다. 해가 바뀌어 9471월 백두산에서는 마그마가 상승해 천지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마그마는 천장을 밀어 올리면서 산체는 풍선처럼 팽창하기 시작했다. 마그마는 기체가 유리되면서 부력이 더욱 강해지고 위로 상승하려는 압력을 증대시킨다. 그러나 화산의 암체는 마그마의 길을 방해한다. 피스톤을 누르는데 주사 바늘이 막혀있는 것과 같다. 균형은 입구를 막고 있던 암체가 제거되면서 깨지고 만다. 천지에서 한 줄기 분연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입구를 막고있던 무거운 암체들은 제거되었다. 마그마는 압력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천지의 분연주는 순식간에 높이 35km까지 올라갔다. 화구에서는 맹렬하게 백색 부석을 뿜어냈다. 천지에서 30km 이내에는 1m 이상의 부석층을 퇴적시켰다. 햐얗게 덮인 부석층으로 인해 백두산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이어서 백두산의 본격적인 주분화가 시작되었다. 샴페인의 뚜껑을 따듯 마그마의 두껑이 완전히 열린 상태에서 천지의 직경과 맞먹는 직경 4km의 분연주는 폭포수의 화면을 거꾸로 돌리듯 하늘 높이 치솟아 대류권을 뚫고 성층권에 달했다. 상공으로 치솟은 분연주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지표를 향해 붕괴되기 시작했다. 화산쇄설물은 다시 칼데라호로 되돌아오는 듯 했지만 화로에서 연기가 흘러넘치듯 외륜산의 외벽을 타고 넘었다. 거대 화쇄류가 발생한 것이다. 섭씨 800도의 거대 화쇄류는 백두산 산록을 질주해 100km 이상까지 도달했다. 화쇄류의 강풍은 산림을 한 방향으로 쓰러뜨리고 뜨거운 퇴적물을 두껍게 퇴적시켰다. 이 화쇄류는 동식물 생태계를 전멸시키고 일대를 생명체가 없는 화산재의 백색 사막으로 만들었다. 화쇄류의 특징은 크기가 고르지 않은 불규칙한 화산쇄설물로 이루어졌고 탄화목이 포함되어 있다. 하늘에서 낙하하는 화산재는 공중에서 열을 잃고 식어있기 때문에 나무를 탄화시킬 열을 가지지 못한다. 탄화목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화쇄류 뿐이다. 지면을 질주하는 화쇄류는 섭씨 800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해 나무를 순식간에 숯으로 만든다. 이것이 탄화목이다. 백두산의 탄화목은 천년 묵은 숯인 셈이다. 화쇄류는 최대 속도 시속 250km, 산악지대를 넘어 대지를 질주했다. 이 엷은 지층은 쉽게 사라져버려 확인할 수 없을지라도 당시에는 100km 이상 먼 곳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화쇄류를 발진시키는 힘은 마그마가 지하에서 수만 년 동안 축적해왔던 열에너지였다.

백두산은 100의 화산 쇄설물을 분출했다. 남한의 면적이 약 10이므로 남한 전체 구석구석까지 1m 높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다. 이 화산재는 일본 북부에 퇴적되어 현대의 학자들이 찾아내기까지 1000년이라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 백두산 일대 지질. 맨 아래에 토양이 있고 그 다음에는 산사태의 퇴적물인 암설류가 있다. 백두산에서 산체의 붕괴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다음에 부석 화쇄류, 그리고 다시 부석, 화쇄류, 이렇게 퇴적되어 있다. 부석과 화쇄류의 분화 사이클이 두 번 있었다.
▲ 백두산 일대 지질. 맨 아래에 토양이 있고 그 다음에는 산사태의 퇴적물인 암설류가 있다. 백두산에서 산체의 붕괴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다음에 부석 화쇄류, 그리고 다시 부석, 화쇄류, 이렇게 퇴적되어 있다. 부석과 화쇄류의 분화 사이클이 두 번 있었다.

 

재분화 위해 에너지 비축 중

▲946년 백두산 대폭발이 일어나던 해의 '고려사' 기록
▲946년 백두산 대폭발이 일어나던 해의 '고려사' 기록

946년 백두산 폭발은 발해가 남긴 만주 일대의 동북아 문화를 붕괴시켰다. 서기 이래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화산분화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근으로 이동했다. 이 무렵 거란으로 50만명, 고려로 10만여명이 유입됐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또한 <고려사> 정종 원년(946) 기록에 是歲天鼓鳴赦(시세천고명사)’라는 기록이 있다. “하늘의 북이 울려 죄수들을 사면했다는 내용이다.

백두산이 언제 어떤 규모로 다시 분화를 할지 알 수 없다. 다만 폭발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보고되었다. 중국측 관측에 따르면 중국 측 최고봉이 7cm 높아졌다고 하고, 지표면에서 나오는 이산화황 때문에 백두산 인근에서 동물들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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