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모시의 모든 것 시집에 담았다
한산모시의 모든 것 시집에 담았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9.12.2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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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 출간
▲시집 표지▲시집에 실려있는 그림▲구재기 시인
▲시집 표지▲시집에 실려있는 그림▲구재기 시인

지난 10월 서천문화원 전시실에서 삼랑 구기순의 전시회 내 숨이 있는 곳이 열렸을 때 폭 30cm, 길이 21m의 두루마리 화선지에 써내려간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한 자라도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기 때문에 손에 경련이 일 정도였으며 어머님께서 정성을 다해 한 필의 모시베를 완성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썼다며 구재기 시인의 연작시를 한산모시연작시를 담았다고 밝혔다. 구기순 작가는 여기 담은 것은 구재기 시인의 연작시 중 일부이고 곧 그 시들이 시집으로 출판될 겁니다고 말했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1220일 출판사 시와소금에서 바로 그 시집이 나왔다.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

 

 

바람이 불어온다/탁류의 금강, 갈대밭에서 흐느끼던 바람이/모시밭으로 불어온다 / <중략> / 쩐지 사이를 가로지른 모시올이/중심없이 흔들리다 조용히 멈춘다/한때 작은 것도/손에 잡히지 않고/생각만 해도 설레이던 일들이/바람처럼 한참 머물다가/고장난 시계처럼 딱 멈추어 선다/ <중략> /홀로 모시를 째고 있는 엄니의/깡마른 앙가슴이 가려진 생모시적삼/모시올 사이로 바람이 인다
<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부분>

시집은 제1부 모시밭에서(15), 2부 이골이 나다(19), 3부 베틀에 앉아(19), 4부 참외서리(16)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과 뒤에 서시끝시까지 합쳐 모두 71편의 시가 담겨있다.

양장본으로 제본되어 나온 시집의 두꺼운 표지를 열면 베틀에 앉아 모시베를 짜고 있는 소녀의 그림이 나온다. “한산골 아가씨 그 나이 열다섯살 토담집에 자라나서 가는 모시 짜고 있네(鵝州女兒年十五, 生長土窟纖纖紵)”로 시작되는 백저사의 주인공인 그 소녀일 것이다.

그런데 그림에는 베틀 각 부위의 명칭 26개가 나온다. 용두머리 눈섶대 잉앗대 도투마리 뱁댕이 끌신..... 모두 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베틀 각 부위의 명칭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가 없다. 하나라도 빠지면 한산세모시는 나오지 않는다.

한산모시 제작 과정 해설이 10컷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 한산 모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쉽게 알 수 있고 69편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1부 모시밭에서에는 1년에 세 번 수확하는 모시풀을 기르는 과정이 담겨 있다. 모시생막걸리를 마시며 모시 포기를 나누어 심고, 검불을 거두고, 모시를 수확하는 농부의 모습이 담겨있다.

2부 이골이 나다에는 모시풀을 벗겨 태모시를 만들고 이골이 나도록 모시를 재서 모시를 삼고 벳불을 피워 모시를 매어 비오는 날 베틀에 올려 모시를 짜는 과정이 담겨있다.

날실의 올수에 맞추는 일은/아직도 시작조차 못했는데/논배미에서 돌아온 지아비의 마른기침 소리가/점심을 재촉한다
<‘모시날기부분>

▲시집에 실려있는 그림
▲시집에 실려있는 그림

3부 베틀에 앉아에는 베틀 각 부분을 능숙하게 다루며 모시베를 짜는 모습이 담겨 있다. 긴 한숨과 삶의 애환이 담겨 있지만, “베틀에 앉아/바디집을 당길 때마다/찰칵, 찰칵, 찰칵, 가볍다/세상에 이렇게 신나는 일이 있을까/엊그제 새벽 모시시장에서/새가 높은 모시 한필/최상급을 받고 팔아왔으니/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으랴(‘바디집부분)”에서와 같은 가슴 벅찬 감동도 있다.

4부 참외서리에는 모시방에서 먹던 동치미와 고구마, 신새벽 모시장터, 가가호호 모시를 삼던 동자북마을과 달고개모시마을의 정경이 나온다. 그러다가 삼아놓은 모시올이 술빵처럼 부풀어오른 위로 등잔불을 잘못 건드려 불똥이라도 하나 떨어지면 어찌되는가. 아찔한 순간도 있다.

구재기 시인이 내놓은 시집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에는 모시를 중심으로 이어온 공동체의 삶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산모시가 낳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서천군 시초면에서 태어나 자랐다. 1978<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그동안 15권의 시집을 냈다. 충청문인협회 회장, 충남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40여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그가 태어난 고향집 산애재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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