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꿈의 도시 꾸리찌바
특별기고 꿈의 도시 꾸리찌바
  • 뉴스서천
  • 승인 2003.12.12 00:00
  • 호수 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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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수를 다녀와서 - ①
11월 21일 금요일 오후 4시가 다 되어서 이륙한 비행기는 구름의 바다 저 아래에 태평양을 둔 채로 마치 긴 여정의 철새가 안정된 날개 짓으로 평온하게 창공을 가르듯 제트기류에 편승하여 날고 있다. 중간 기착지인 사웅 파울로 까지는 LA공항에서의 환승시간을 제하고도 아직 20여 시간이나 비행기를 더 타야 한다. 참으로 먼 길에 나섰다는 생각과 이번 해외연수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새삼 되새겨 본다.
꾸리찌바는 사실 생소한 도시이다. 문화·경제적 사대주의를 구태여 들먹이지 않아도 서구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속한 도시도 아니다. 우리가 우월감에 빈정대듯 알고 있는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정치인들이 잠을 잘 때만 발전하는 나라’, 걸핏하면 ‘국가채무불이행(Default)을 들먹이던 나라’, 그저 삼바와 축구에만 열광하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미 브라질의 변방에 속한 도시이다. 혹간 이 도시에 대하여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튜브형 버스정류장이나 이중굴절형 버스 등 교통정책에 성공하고, 환경을 중시하는 특이한 도시라는 단편적인 인식에 그친다.
그러나 꾸리찌바는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선진제국 조차도 그들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의 유수 언론은 물론이고 유엔 산하기구의 보고 및 연구자료 속에 ‘꿈의 도시’‘희망의 도시’‘존경의 수도’등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국내에는 대전광역시 교통정책자문관으로 계시는 박용남 선생의 저서‘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통해 그 도시의 성과에 대하여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접한 후 참으로 신선한 충격과 교훈을 얻었으며 꾸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군에서는 금년 초부터 전 직원의 필독서로 채택하여 독후감을 제출케 하였고 저자인 박선생의 강연을 통하여 꾸리찌바시의 일관된 도시관리 철학과 행정원칙을 전해 들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以不如一見)이라 했던가. 박선생 또한 방문을 통한 체험과 현장학습을 강력히 권한바 있고, 우리 군이 비전으로 설정한 ‘어메니티’를 우리 지역의 성장을 위한 자원으로 개발코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는바 그들의 노력과 성과를 직접 접하고 공부하기 위하여 직원 몇 명과 해외연수를 갖게 된 것이다.
날짜변경선의 덕택으로 30여 시간의 비행에도 불구하고 중간기착지인 사웅 파울로에 도착하니 여기 시간으로 토요일 오전이다. 호텔에 간단히 여장을 풀고 나선 사웅 파울로는 왠지 모르게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이다. 유럽 이민들이 정착하여 조성한 도시이어서인지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도로망, 도심의 유서 깊은 공원 등 기초적인 인프라는 훌륭하고 부럽기까지 하지만 왠지 망한 부잣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브라질의 어려운 정치·경제적인 상황이 반영된 탓인지 전통적이고 훌륭한 도시 인프라와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이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불균형을 보았다. 심지어 브라질 독립의 역사를 증언하는 독립기념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초조하고 전혀 자신들의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불안한 모습에서 지역의 정치와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군수로서 만감이 교차한다.
드디어 꾸리찌바에 도착했다. 비행기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첫 인상은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대 위에 숲과 어우러진 나지막하지만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건물군들이 보인다. 사웅 파울로에 대한 우울한 인상 때문인지 책으로 인한 선입견인지 왠지 정감이 있어 보이는 풍경이다. 박선생 책의 부제가‘재미와 장난으로 만든 생태도시 이야기’이었던가.
처음 접한 공항의 입국심사대에 이르는 복도에 그려진 창의적이고 눈에 확 뜨이는 벽화. 동행한 직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벽화뿐만 아니라 공항 전체가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았으면서도 승객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시설 자체가 유지비가 절감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소박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 이 ‘소박함’과 ‘품위’라는 단어는 꾸리찌바 연수 내내 견학을 한 곳 마다 느낀 감정이었다.
공항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호텔에 여장을 풀기 위해 5개 주요 간선교통축 중에 하나를 달리고 있다. 그 유명한 이중굴절버스가 ‘3중 도로시스템’의 중앙도로를 쾌속으로 주행하고 있다.
듣던 대로 2단계의 교통신호 체계로 인한 짧은 대기시간과 연결도로의 일방통행과 특수한 좌회전 차선 덕분인지 차량정체를 거의 느낄 수가 없다. 우리와 동행한 교포 가이드가 박선생의 책을 열심히 공부하며 현지에서 습득한 지식으로 열변을 토한다. “꾸리찌바는 이러한 주요 간선축의 ‘3중 도로시스템’의 구조축과 연계된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합니다. 즉 이 축을 따라 입지한 부지는 600%의 용적율을 허용하여 상업지나 고밀도 주거지를 배치하고, 차츰 멀어지면서 용적율이 400%에서 100%로 떨어집니다.
이를 통해 교통소통의 원활과 도시의 경관(스카이라인)유지 및 여러 요소를 감안한 용도구역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새로이 개설되는 교통축과 인접한 토지를 시가 취득하여 고밀도로 개발하여 저소득가구 주택단지를 건설하였습니다.”가이드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레르네르 전 시장이 한 말이 떠오른다.
“꾸리찌바시는 천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시민들을 존경하는 것이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점이지요. 그 한 예로 우리들은 브라질에서 가장 훌륭한 교통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부지런히 견학을 다녔다. 시민의 길, 꽃의 거리, 지혜의 등대, 바리귀공원, 땅구아공원, 식물원, 오페라 데 아라메 극장, 창조센터, 재활용공장 등 사실이 그러하듯 다시는 오기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에 무더운 여름 날씨를 즐기면서(?) 책에 소개된 곳은 모두 보고자 했다.
어떤 날은 아침에 가이드가 도착하기로 약속된 시간보다 전에 호텔에서 나와 호젓이 거리를 거닐기도 했다. 방문한 모든 장소가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소박하고 품위가 깃든 곳으로 만들었다는 느낌과 거기에는 그들의 번뜩이는 창의력과 지혜가 모여 있고 가장 밑바닥에는 시민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취약하지만 그들만의 문화가 확립되어 있고 나름대로 탄탄한 공동체 의식 속에 사회 구성원이 결속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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