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명의(名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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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0.03.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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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칼럼위원
최용혁 칼럼위원

중국 춘추전국시대, 전설적인 명의 편작에게는 위로 두 명의 형이 있었다. 모두 의술을 하는데, 첫째 형은 발병하기 전에 미리 치료하고, 둘째 형은 병세가 깊어지기 전에 치료하며, 편작은 환자의 병세가 위중한 뒤에야 알아보고 독한 약과 큰 수술로 사람을 살려낸다는 것이다. 뭇사람들이 보고 말하기를, 위로 두 형은 별 볼일 없고 편작이 위대하다고 하지만, 집안에서는 편작의 의술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친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환생한다면 편작은 서울대학교 병원이나 현대 병원, 삼성 병원 등 줄만 대도 병 고친 것과 맞먹는 실력자라 칭송받을 큰 병원의 의사가 되었을 것이고 형들은 서천 읍내 가정의학과 정도, 또는 서천군 보건소, 보건지소에 둥지를 틀었을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겠다. 춘추전국시대의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실력이 자리를 만든다고 보기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어렵다. 춘추전국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바야흐로 쇼맨십과 자본의 활용이 더욱 절대적인 엔터테이너의 시대이다.

서울대학교 병원과 서천읍내 가정의학과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예약의 어려움, 진료 시간의 효율성, 병의 위중함, 인적 네트워크라 불리는 든든한 배경, 환자의 절실함, 의사의 사회적 명성과 더 높은 봉급 등등 수 없이 많은 것을 꼽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의료장비의 차이가 병원의 차이를 결정한다. 병원 내부 사정을 잘 모르더라도 이 정도의 추정은 상식적이다. 병원뿐인가? 낚시도 장비빨, 캠핑도 장비빨, 스포츠도 장비빨, 그리고 무엇보다 농사도 장비빨이다. 장비의 차이가 낚시, 캠핑, 농사와 의료의 질을 결정한다. 정확한 진단과 쾌적한 환경은 우리 삶의 토대이다. 그러므로 은빛 금속으로 번쩍이는 최신 장비 앞에서 혹시, ‘장비에 의한 인간 소외를 주장하고 싶다면 대단한 농담이 아닐 수 없겠다. 몇몇은 장판교를 막아선 장비의 용기에 견줄만하다고 부추길 수도 있겠지만, 원만한 사회생활을 유지하기에는 위험한 일이다.

결국, 춘추전국시대에서 2500여년 이상 흘러 지금까지 전해지는 명의는 편작이다. 역사에 승리와 패배라는 것이 있다면, 승리자는 편작이다. 일상을 함께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가능했을 그 형들은 패배에 속한다. 전설과 쇼맨십과 엔터테이너는 희망이 되고 삶의 에너지가 된다. 거기까지다. 열광하는 것으로 내 삶이 대체될 수 없는 안타까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광은 계속될 것이다.

편작이 내 치질과 충치와 감기와 불규칙하고 무절제함에 대해 일언반구 해 줄 리 없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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