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가르침은 내일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유도한다. ‘그래서,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 건데’ 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다.
누구든지 공부만 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준 이가 공자요 맹자이며 제자백가이다. 여기서 나온 고사가 ‘송무백열松茂柏悅’이다. 소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측백나무가 기뻐한다는 말인데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면 마당에 소나무를 심고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다. 훗날 딸이 시집을 갈 때쯤이면 그 오동나무를 베어 반닫이 옷장을 해주고 아들이 등과하면 소나무를 베어 등과한 아들에게 더욱 공부하여 군주를 보필하는 왕좌지재가 되라는 의미로 송안松案을 만들어준다. 쉽게 말해서 송무백열이란 아들이 공부를 잘하면 부모가 기뻐한다는 말이다.
이는 곧 실천으로서의 공부가 있음을 말한다. 한나라 때 학자 정현은 공부의 시작은 마땅히 대학 책으로 기초를 삼아야 한다고 말한 인물이다. 여기서 진일보한 인물이 사마광인데 관료가 되어 나라를 다스린다거나 군주가 되어 천하를 통치하려는 뜻을 둔 부모라면 어린자녀로 하여금 마땅히 대학 책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래 대학 책은 공자의 사상을 증자가 일부 적어 놓았고, 이를 증자의 제자이자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보주한 것으로 고본 대학이라 하며 장, 절. 없는 구句가 정본인 것을 주자가 정호와 정이 형제의 연토를 저본으로 경 1장과 전 10장으로 분조. 주석을 현懸하고 친민親民을 신민新民으로 고치고 보망장補亡章을 두어 격물, 치지 편을 첨添하여 ‘대학장구’를 찬纂 했으며 주자가 죽기 3시진<이본엔 3일전> 전까지 수정 보완을 반복했다는 책이다.
척재 이서구는 말한다. 공부에 뜻을 세웠다면 반드시 대학 책을 먼저 읽어 골업骨業을 하라 한다. 즉 뼈대를 세우라는 말이다. 이서구라는 인물은 학자로 봐야 할지 관료로 봐야 할지 도인으로 봐야 할지 꽤 경계가 모호한 인물이다. 5세 때 모친<평산신씨>을 여의고 계모 류씨가 들어오는 바람에 외가로 가서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평산신씨 종학을 계승한 인물이다.
그렇게 7년을 사기, 통감, 사략, 공부를 마치니 외할아버지 왈, 이제 본가로 돌아가서 아버지께 대학을 더도덜도 말고 3년만 공부하거라. 본래 역자교지易子敎之라 하여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외할아버지는 외손자에게 ‘아버지에게서 대학을 공부하라’ 한다. 여기에는 어머니의 죽음과 계모가 들어옴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떨어져있었던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소원해질 것을 염려한 외할아버지의 배려인 것이다.
그렇게 12세가 되어 본가에 돌아와서 아버지로부터 3년을 대학을 읽고 공부에 뜻을 세운 후 16세 때 연암 박지원을 찾아간다. 여기서 혹독한 공부를 한다. 연암이 술 마시며 놀기를 좋아하는 인물이 분명하나 공부에 있어서는 훈육이 아닌 훈련이었다고 전한다. 특히 이서구는 학이지지가 아닌 곤이학지困而學之형 인물이라 하여 남들이 한 시간 공부할 때 곱절을 더 해야 깨우치는 인물이다. 이말의 출전은 논어계씨 9문장인데 옮겨보면 이렇다.
공자 말한다. “날 때부터 알고 태어난 자는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고, 잔뜩 시달려본 후에야 깨닫고 공부하는 자는 또 그다음이고 그렇게 당하고도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는 백성이니 곧 바닥이다<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 상야上也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 차야次也 곤이학지困而學之 우기차야又其次也 곤이불학困而不學 민사위하의民斯爲下矣>”
그러자 “선생님은 날 때부터 알고 나신 분입니까”라고 묻는 제자를 향해 언감생심 펄쩍 뛰어 손사래를 치면서 말한다. “나는 날 때부터 아는 자가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여 남보다 더 빠르게 찾아다니면서 배웠을 뿐이다<아비생이지지자我非生而知之者 호고好古 민이구지자야敏以求之者也.논어술이18문장>”
이렇게 공부한 이서구에게 스승 연암이 말한다. 공부가 이쯤 이르면 등과를 해도 무방하네 하며 등과를 권하니 그해 가을 등과를 한다. 그의 나이 21세 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