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어느 삼남매의 주검
■ 모시장터 / 어느 삼남매의 주검
  • 박자양 칼럼위원
  • 승인 2020.05.28 14:59
  • 호수 10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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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양 칼럼위원
박자양 칼럼위원

       먼 데서 울려오는 청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새벽공기를 가르며 온 마을에 퍼지기 시작한 지도 달포는 족히 지난 듯하다. 그런데도 봄이 더디 오는 건지 조석으론 아직도 살얼음이 얼 정도로 기온이 곤두박질친다. 아직도 겨울 내복을 꼭 껴입고 사는 처지인지라 햇살이 충분히 퍼진 후에야 텃밭엘 나섰다. 삼월 중순 경 씨감자를 묻고 행여 싹이 얼어버릴까 좌불안석 감자두둑을 이리저리 살핀다. 이랑 하나만 땅을 뒤집고 감자를 심은 터라 시기상 너무 늦지 않게 나머지 이랑들도 일굴 준비를 하느라 농기구를 가지러 막 창고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창고 앞 나뭇가지 사이를 안절부절 오르내리는 딱새 수컷 한 마리가 날카로운 경계음을 내지르며 앞을 가로막는다. 예사롭지 않다. 창고에 다가갈수록 경계음은 더욱 고조됐고, 하는 수 없이 조금 떨어져 지켜보기로 했다. 잠시 후 수컷은 날아가고 암컷이 등장하더니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잽싸게 호미만 들고 나오자 둘은 오간데 없고 주변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다음 날도 같은 상황은 반복됐고, 미루어 짐작컨대 창고 안에 둥지를 튼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에게도 내게도 더 지체할 수 없어 괭이며 호미며 삽과 갈퀴, 전지가위 까지 당장 밭을 뒤집는데 필요한 농기구 몇을 생각나는 대로 재빨리 밖으로 내다 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창고 입구를 살폈다. 서둘러 자리를 피해주느라 창고 어느 구석에 둥지를 틀었는지 살필 새도 없이 나오고 보니 슬쩍 궁금했지만 참기로 한다. 날이 갈수록 경계는 점점 더 그 강도를 더해갔고 포란 중인지 딱새 암수 모두 조금 지쳐 보이기도 했다.
       
하루 이틀 날이 더해가고 이제는 마당에 나서려 문만 열어도 비명 지르듯 경계음을 낸다. 못 들은 척 나는 나대로 밭을 뒤집으면서도 온 신경은 창고로 향해있다. 보름을 지나 삼 주째로 접어들던 어느 날, 밤새 꽤나 많은 비가 온 뒤라 집 주변을 둘러보러 마당에 나서던 중이었다. 헌데 너무 조용하다 이상하리만큼. 우연히 눈에 들어온 무성한 잡초 탓에 생각은 널을 뛰고 호미와 창고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기다 딱새의 경계음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린 순간 느낌이 좋지 않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창고입구로 다가가다 흠짓 놀라 멈춰 섰다. 바닥에 널부러진 세 마리 어린 새의 사체와 그만 맞닥드리고 말았다. 한참을 굳은 듯 서서 바라보다 엉거주춤 고개를 숙여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확인해야만했다. 날카로운 이빨자국, 뜯겨진 날갯죽지, 치명적인 상처만 낸 채 비교적 온전한 세 마리의 사체가 모두 한 장소에 모아 버려진 것 등등, 먹이사냥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로 죽임을 당한 흔적들이다.
       
세상에 나와 날개짓 한 번 못 해보고 죽임을 당한 딱새 삼남매를 묻어주며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뭔 조화속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포식자의 눈을 피하느라 둥지가 있는 창고를 우회비행으로 드나들며 애써 새끼를 키우던 딱새 한 쌍이 이삼일 뵈질 않더니 어느 날 오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의연해 보인다. 감상적 사고의 새치기를 어떻게든 피해보고자하나 이리 황당한 주검을 마주해야 할 때면 참으로 통제가 쉽지 않다. 귀촌 이후 벌써 수차례 겪는 일이다 보니, 땅을 딛고 사는 삶과 직간접적인 살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이제는 인정해야할 때가 된 듯도 하고. 그래봤자 인간인 나는 이 곳 소생태계 내에서도 그저 미미한 주변객체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 이미 일어난 일을 붙들고 떨어대는 객쩍은 오지랖은 아닐는지. 낮게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끝나고 이어지는 소식 하나... 로힝야족 난민 최소 1천여명이 이주할 곳을 찾아 배를 타고 매 순간 죽음에 직면한 채 동남아시아 바다를 떠돌고... 올 봄은 여러 가지로 우울한 시절인연과의 조우가 잦은 모양인가. 절로 밖으로 향하던 답답한 시선이 마당 한켠 꽃무더기 사이 맑은 빛을 부리는 작은 작약꽃봉오리에 머물더니 이내 눈 녹듯 스러진다. 무상(無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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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영 2020-07-27 10:27:55
찬란한 슬픔을 노래했던 시인이 생각나네요
내 눈과 내 판단!! 이거 잘 된 것인지...
우주적인 식견은 바란 적도 없거니와
소박하게 일어난 일에도 분노의 밤을 보냈던 적이...
큰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을 때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