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아버지의 세움과 아들의 키움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아버지의 세움과 아들의 키움
  • 송우영
  • 승인 2020.06.04 0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우영
송우영

학봉이 약관의 나이에<학봉약관鶴峯弱冠> 책을 짊어지고 계상서당으로 가서 퇴계 이 선생을 뵈었는데<부급왕배계상負笈往拜溪上> 이 퇴계는 그의 모습과 행동을 보고<이선생견기용지李先生見其容止> 이미 마음속으로 허여하였다.<이심허지已心許之>

제자 학봉 김성일을 가르치면서 그가 열심히 공부하자 느낀 점을 장손 이안도에게 편지를 써서 손자가 공부에 더욱 힘쓰기를 권하기도 했는데 그 편지의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요사이 보니 김성일은<근간금모近看金某> 뜻을 세워 공부하는 자세가 매우 좋아<지취심호志趣甚好> 능히 공부를 오롯이 하고 있으니<능전의차사能專意此事> <장손 이안도 너도>마음을 세움에 있어서 성실하고 절실하기가 학봉 김성일같이 한다면<립심지성절여차立心之誠切如此>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겠으며<하구부득何求不得> 무엇을 배운들 이루지 못하겠는가<하학무성何學無成> - 중략 - 이 사람은 뒷날에 반드시 큰 그릇이 되리라.<차인타일필위대기此人他日必爲大器>”

퇴계의 바램대로 학봉 김성일은 퇴계의 학통을 잇는데 경당장흥효석계이시명갈암이현일밀암이재대산이상정 등으로 전수되며 선조실록에는 서애 류성룡, 월천 조목, 학봉 김성일을 일러 퇴계문도 삼영수退溪門徒三領袖로 기록하기도 한다.

어린이 교과서의 바이블이라는 계몽편啓蒙篇을 쓴 장혼張混은 자식을 낳아 훌륭히 길러낸 그런 아버지를 향해 주례사를 아끼지 않는데 아름다움은 스스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미불자미美不自美> 사람으로 인하여 빛이 난다<인인이창因人而彰>”고 그의 책 동사촬요東史撮要에서 밝히고 있다.

학봉은 입신출사 뿐 아니라. 종학에도 전심전력을 다했는데 부모는 자녀를 세워야 하고 자녀는 세움을 더 크게 키워야 한다며 후손을 위해 계자훈戒子訓을 썼는데 입지立志편 초두에 말한다. “공부하는 자녀가 근심할 바는<학자소환學子所患> 오직 뜻만 세우되 뜻을 이루겠다는 성실함이 없을까를 걱정해야지<유재입지불성惟在立志不誠> 재주가 혹시 부족할까 라는 생각은<재혹부족才或不足> 전혀 근심할 바가 아니다.<비소환야非所患也니라>”

이를 제자들을 훈계하는 계제자훈戒弟子訓에서 다시 풀어 말한다. “공부하는 자는 뜻을 세운 것에 성실하지 않을까를 걱정할 일이지<人患立志不誠> 어찌 재주가 모자람을 걱정하겠는가.<何患才不足乎> 재주가 없다고 해서 군자가 못되는 것은 아니다<無才不妨爲君子儒> 재주가 있어도 소인이 되는 까닭은<有才亦不免小人之歸> 공부하는 목적을 나를 위하느냐, 남을 위하느냐,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있다.<在所學之爲己爲人耳>”

이 말의 원전은 논어 헌문憲問편으로 공자의 말이다.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옛날엔 공부하는 것이 사람됨에 있었는데<고지학자古之學者 위기爲己> 지금은 공부하는 이유가 남들의 이목을 끌기 위함이니(안타까울 뿐이다).<금지학자今之學者 위인爲人>

황정견은 이 말을 쉽게 풀어 썼는데 사람 됨됨이를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기쁜 일을 만나게 되고<위기학자필우경爲己學者必遇慶>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한탄을 만나게 된다.<위인학자필우한爲人學者必遇恨>”

이를 서경덕은 위인지학과 위기지학을 공부하는 자세를 들어 풀이하는데 만약 바르게 앉아 공부하지 않으면<약불위좌若不危坐> 생각이 한결같지 않으니<사려불일思慮不一> 생각이 한결같지 않으면<사려불일思慮不一> 이치를 궁리할 수 없다.<불능궁격不能窮格. 화담집花潭集>” 황진이의 자세가 다소 흐트러지자 스승인 화담이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 공부한다는 것은 몸을 세우는 일이요<입신立身> 몸을 세우는 일은 힘써 공부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이력학위선以力學爲先> 공부의 힘은<역학力學> 책을 읽는 것이 근본이다.<이독서위본以讀書爲本> 율곡 이이李珥는 격몽요결에서 공부의 시작은 뜻을 세움이라 했다. 퇴계는 실천궁행증대實踐躬行增大라 하여 세운 뜻을 키움이라 했다. 아내가 자녀를 낳으면 남편은 그 자녀를 세상에 우뚝 세워야 하며 자녀는 아버지의 세움에 힘입어 가문을 키워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