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향 품에 안긴 정완희 시인
다시 고향 품에 안긴 정완희 시인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0.06.24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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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집 ‘붉은 수숫대’ 출간
▲정완희 시인
▲정완희 시인

정완희 시인, 그가 22일 신문사를 찾아왔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은 판교면 복대리. 주말이면 장항선을 타고 아산과 판교를 오르내리더니 이제 옛집으로 온전히 돌아왔다는 것이다. 나이 60이 넘어 되돌아와 어릴 적 함께 살았던 산천초목을 다시 대면할 고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의 귀향을 축하해주었다.

그가 불쑥 시집을 내밀었다. <붉은 수숫대>. 이번에 실천문학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2005<작가마당>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두 권의 시집을 낸 바 있는 그의 세 번째 시집이다. 1980년에 오늘의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주체로 무크 <실천문학>이 창간되고, 이를 바탕으로 그해 9월 출판사 실천문학사가 탄생했다. 1994년부터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여한 이래 많은 시인들을 배출한 출판사이다.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조영관의 유고시집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도 이 출판사에서 나왔다.

오십이 다 되어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으니 늦깎이 시인인 셈이다. 사실 그는 평생 엔지니어로서 기곗밥을 먹고 살았던 사람이다. 떠밀려 도시로 나오면서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에 갇혀 청춘을 바쳐 일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농촌과 도시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그의 삶이 토해낸 시어들은 무엇일까.

시집을 열어보았다. 52편의 시가 4부로 구성되어 편집된 시집 1부 첫 시로 시집 제목의 붉은 수숫대가 실려 있다.

붉은 수숫대가 서 있다
천만 원 이하 벌금이거나
2년 이하 징역의 경작금지 팻말이
쓰러져 있는 둑방 길 가

경작주는 잘 익은 놈들만 골라, 남몰래
모가지만 뎅강 잘라 갔다
온몸에 흘러내린 선명한 핏자국


이제 수숫대는
강남역 네거리 붉은 현수막 두른 철탑 위
붉은 조끼 입은 해고 노동자가 되어
차가운 바람 앞에 섰다

늦가을 찬 서리가 내리고
겨울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이파리 껍데기 모두 칼바람에 날리고
하얀 몸통만 남아 비틀린 세상에 맞서며
<붉은 수숫대 / 전문>

농촌 출신이라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목이 잘려나간 수숫대. 시인은 도회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뒤틀린 세상에 맞서는 노동자, 아니 자신을 대입시킨 것이다. 처절한 비장감이 느껴진다.

출판사의 서평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인 동시에 언제 실직자가 될지 알 수 없는 노년기에 다다른 시인 자신을 상징한다고 쓰고 있다.

▲시집 붉은 수숫대 표지
▲시집 붉은 수숫대 표지

정 시인과는 사뭇 다른 시 세계에서 살아온 기산면 출신의 나태주 시인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이제 늙어 나 혼자만의 시를 고집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은 젊은 시절 이래로 그랬다. 나와 다른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들을 비난하지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을 배우고 수용한다. 이번에 읽은 정완희 시인의 시들도 그렇다. 내 방식대로 말한다면 이 시인의 시들은 측은지심의 시들이다. 부처님 식으로 말하면 자비심이고 예수님 식으로 말하면 긍휼히 여김이다. 이 얼마나 귀한 세계이고 따뜻한 세상인가. 이 세상은 나 혼자만 뻗대며 사는 세상이 아니다. 너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이제 그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포근한 고향의 품에 안겼다.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몇 년째 아산과 고향 서천으로 / 오도이촌을 하며 시골살이를 준비하다 / 이제 서천으로 귀향했습니다. / 텃밭 농사를 하며 소소한 행복에 젖어봅니다. /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 시골로 뿌리를 내리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는 현재 한국작가회의 충남지부 회장으로 활동하며 충청남도 지령과 인걸들을 더듬고 있다. 10월에는 충남민예총과 함께 금강을 주제로 큰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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