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청년투자는 곧 미래, 건강한 정치만이 해결
■ 모시장터 / 청년투자는 곧 미래, 건강한 정치만이 해결
  • 한완석 칼럼위원
  • 승인 2020.06.24 18:47
  • 호수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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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석 칼럼위원
한완석 칼럼위원

청년세대에 대한 문제는 장수세대에 대한 문제와 함께 우리 한국사회 뿐만이 아니고 전 세계가 처한 큰 문제이다. 그리고 미래의 가치기준과 살아야 될 길, 희망호를 띄울 수 있는 그룹은 청년세대이다. 청년에 투자하는 것, 이것은 우리의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일 것이다.

일본의 알바 청년들,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국외로의 청년 탈출, 한국의 N포세대 청년들, 동남아시아 청년들의 코리안 드림, 정치 논리의 노인 복지정책에 의해 외면당한 청년복지정책 등은 그들만의 기득권을 위해, 정치와 기업 그리고 권력 등이 그 원인이었다. 대기업에 집중투자하면 낙수효과로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라고 외치는 정치경제 전문가들 덕분인지 국내기업 사내유보금이 700조원을 육박한다고 한다. 고용과 경제부양을 할 것이라고 국민들의 동의까지 얻었던 정치와 경제는 기대와는 달리 국내 굴지 기업들은 돈을 곳간에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사내유보금에 세금 물리고, 그 돈으로 청년 일자리를 만들자라고 까지 하겠는가.

일자리의 기초인 중소기업까지도 정치와 기업에 휘둘리고 있으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의 대기업과 98%의 중소기업이 공존공생, 상생의 사회적 대타협으로 청년복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독일과 대조적이다.

세계는 청년투자에 올인하고 있다. 정치와 기업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인구감소시대의 핵심에 청년층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의 경기침체, 청년층 붕괴, 세대갈등 등이 1990년대의 일본을 답습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자 중심의 정책과 인위적 경기 부양책들만 포퓰리즘으로 접근했을 뿐 정규직 취업, 결혼, 출산, 정상적인 사회활동 등의 당사자인 청년들의 정책들은 삭제되고 외면받았다. 청년들의 고통적인 삶은 후순위로 밀려나면서 미래의 존재감조차도 사라졌다.

이대로의 청년 정책이라면 30년 후의 한국사회는 소멸될 것이라 한다. 일하는 청년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며, 그들 중 1년 이상 계약자들은 3% 정도라 한다. 신규 실업자의 70%가 사회 초년생들인 20대 후반이다. 이 시대의 청년은 나약하고, 안쓰런 존재로 상징되고 있다. 외면당한 한국의 청년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공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간 지휘부 이상의 이상한 꼰대들의 무개념적 자아도취에 젊은 직원들의 신개념 시스템이 묻혀버리며 젊은 층의 직업정신과 미래 가치기준 그리고 건강한 직장생활과 사회생활까지도 기득권층에 휘둘리고 있으며, 심지어는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의 댓가로 진급 등의 인사 권력에 줄세우기 당하고 있다. 공조직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라의 정책과 건강사회와 주민들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할 젊은 세대의 공직자들을 타락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구변화란 구조적인 문제로 청년의 고통스런 삶을 이해하고 특정세대의 문제가 아닌 전 세대의 공동의 과제라는 점으로 이를 해결치 않으면 한국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고 한다. 기성세대의 정치가 각성치 않으면 공멸하는 것이다. 또한 청년을 대변할 수 있는 젊은 지도자들의 소그룹이 당연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는 그들이 일어설 수 없도록 팍팍한 삶의 사회구조로 막아놓고 있다.

청년의 가난은 곧 노년의 빈곤으로 다가온다. 특정세대만이 행복하고, 어떤 세대만 불행해지는 제로섬 게임은 있을 수 없다. 혼자만 잘 산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삶일까. 항상 우리라는 굴레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다. 그것이 정치고, 경제고, 문화고, 곧 미래이며 이를 꿈꾸게 할 수 있는 것이 곧 청년이다.

저성장이란 새로운 시대를 인정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해야 할 때다. 이 시대의 고민은 성장에서 성숙으로, 1등 밀어주기가 아닌 상생의 길을 찾아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구조 시스템으로 바꿔나가야 된다. 이러한 과장에서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이는 정치만이 해결할 수 있다.

1912년 영국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빙하와 부딪혀 침몰 10초 전까지도 안에서는 만찬과 연주회, 자기들만의 즐거움에 빠져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의 정치사회의 상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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