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반포유고습유서(伴圃遺稿拾遺敍)’라는 글을 쓰다 연꽃도 생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계묘년 연꽃 생일날 실사구시재가 쓰다.
연꽃 생일은 음력 6월 24일이며 관련절이라고도 한다. 실사구시재는 추사의 당호이다. 이 때 연꽃에도 명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꽃말은 있어도 꽃명절이 있다는 말은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다. 맞다. 나는 어리석게도 꽃을 좋아만 했지 꽃을 사랑하지는 못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꽃 3가지를 꼽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매·죽·연을 꼽겠다.
“헤, 선비 노릇까지, 가지가지 다하네.”
사람들은 빈정댈지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나에겐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아서 좋고, 대나무는 언제나 속을 텅 비우고 있어서 좋고, 연은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아서 좋다. 세상을 살면서 그리 산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만 나는 솔직히 그렇게 못 살았다. 그리 살려고 안쓰러우리만큼 노력해왔을 뿐이다. 살면서 왜 향기를 팔지 않았겠으며, 왜 마음을 비우지 못했겠으며, 왜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꽃들을 더욱 좋아한다.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매화 좀 키울 수 없을까.”
“그게 어디 쉬운 줄 알아요?”
다 내 몫이니 어불 성설, 아내는 말을 말라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꽃에게 미안함을 넘어 많은 죄를 지었다. 물을 제 때 주지 못해 얼마나 많은 꽃들이 내게서 죽어나갔는가. 그것을 내 아내와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꽃을 좋아하기는 하나 진실로 사랑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리하고도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사랑의 시 수백편을 썼으니 참으로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
요새 아내에게 말 한 번 잘 못 했다간 본전도 못 찾는다. 그렇게도 나는 철딱서니가 없다. 공부만 하지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제대로 없다. 학자로서의 본분이야 지킬지 몰라도 생활은 영 딴판이다. 부닥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아내가 나와 함께 살아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하다.
내 인생에 굽을 틀게 해준 사람이 있다. 그 때 그 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나를 늪에서 구해준 눈물겨운 은인이다.
“선생님의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합니다.”
그 말이 내 전부이다. 행하지 못하고 말만 하는 사람, 나,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럽다.
연꽃에 생일이 있듯 굽을 튼 인생의 인연에도 생일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 분과의 만남을 추억한다는 것은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한 일인가. 내가 연꽃에도 생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뒤늦게 이런 생각이라도 했으니 아찔하지만 천만 다행이다.
내 중학교 선생 때의 제자이다. 얼마 전에 차를 부쳐왔다. 차맛이 좋아 선생님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어떤 대학교 제자는 때때로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이러면 45년 선생에 본전(?)은 건진 것이 아닌가. 선생으로서 잘 살아온 것은 아니어서 억지 위로를 내가 내게 해주는 것이다. 세상에는 배반 아닌 배반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아왔다. 다 잘못 살아온 자기 탓이리라. 그도 다 인연이라면 인연이리라.
고희이다. 학문을 이제 모두 내려놓을 생각이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기다리고 고대했던 나만의 예술에 제대로 된 발자국을 디뎌볼 생각이다.
참말로
서러운 사람은
파도가 없다
참말로
그리운 사람은
바람이 없다
그 많은
파도와 바람이
방파제에서
부서진 것이다.
- 「내 사랑은 45 」
옛날에 쓴 것인데 지금의 나를 두고 쓴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와 제목을 ‘내 사랑은’ 대신 ‘연꽃 생일’로 바꾸어도 깊은 뜻이 있을 것 같다.
인생의 굽을 튼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오늘 인연의 꽃, 연꽃 생일이다.
<석야 서재 매월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