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 칼럼 / 농촌은 식민지인가?
■ 하승수 칼럼 / 농촌은 식민지인가?
  • 하승수(변호사, 녹색전환연구소 이사)
  • 승인 2020.09.24 11:36
  • 호수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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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하승수

경기도에서 살다가 충청남도로 완전히 이사한 지 4년이 되었다. 사는 곳이 농촌지역이어서, 같은 충남이라도 도시지역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예전에 강준만 교수가 지방은 내부식민지다라는 주장을 했지만, 같은 지방이라도 농촌에서 느끼는 심각성은 더하다.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지역으로 사람 대신 밀려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바로 폐기물, 송전탑, 축사, 각종 공장 같은 것들이다.

필자가 사는 충남지역은 곳곳에 들어오려는 폐기물매립장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 폐기물들은 생활폐기물이 아니라 사업장폐기물, 건설폐기물, 지정폐기물 같은 것들이다. 그러니까 공장, 사업장, 건설업 등에서 나오는 폐기물들이다. 그리고 이 폐기물들은 지역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아니다. 수도권, 대공장 등에서 나오는 폐기물들이 충남지역으로 밀려들어오려 하고 있다.

충남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라는 마을이 있다. 매우 조용한 농촌마을이다. 그런데 여기에 모 현역 국회의원이 대표이사로 있던 폐기물업체가 2011년부터 사업장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소송만 7년 이상 진행하고 있다. 그로 인해 마을공동체가 갈라지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런데 이 농촌지역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양이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도시와 공장에서 밀려드는 폐기물이 인구가 적은 농촌마을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에 폐기물매립장을 운영하던 일부 업자들 중에서는 매립이 끝나면, ‘먹튀를 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뒷감당은 지자체나 주민들이 하게 되는 실정이다.

송전탑도 여전히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충남 지역에는 전국 석탄화력발전소의 절반이 몰려 있다. 그리고 그 발전소들에서 나오는 초고압 송전선들이 지금도 거미줄처럼 얽혀있는데, 새로운 송전선을 또 건설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지금 있는 송전선 때문에도 소음피해, 건강피해, 재산상 피해, 농사피해 등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 마을 바로 위를 지나가는 송전선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 것이 한국전력공사의 모습이다. 만약 서울 강남이었다면, 이렇게 송전선을 지상으로 마구 건설할 수 있겠는가? 이런 초고압 송전선에 흐르는 전기는 농촌마을에서 주로 쓰는 전기가 아니다. 결국 대도시와 대공장으로 가는 전기가 많다. 그런데 피해는 고스란히 시골마을이 뒤집어쓰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농촌마을 주민들이 고통받는 원인이 축사문제이다. 공장식 축산으로 대규모화된 가축 축사에서 나오는 악취 문제 때문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농촌마을이 고통받고 있다.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 구제역 사태 등으로 매몰된 동물들의 사체로 인한 지하수 오염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가축 축사에서 나오는 고기는 결국 어디로 가는가? 농촌사람들도 고기를 많이 먹지만, 훨씬 큰 소비지는 대도시이다. 그런데 피해는 고스란히 농촌마을이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나 단지 이런 피해가 있다고 해서 식민지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농촌마을 주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제대로 반영이 된다면, 굳이 식민지라는 표현까지는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국회든, 정부 관료들이든 농촌주민들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 듣는 척 해도,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농촌이 지역구인 국회의원들도 실제로는 농촌에 거주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 그들은 농촌에서 표만 받아갈 뿐이다. 그들이 실제 소속감을 느끼는 곳은 서울과 강남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농촌에서도 국회의원을 뽑지만, 실제로 농촌주민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려는 국회의원은 찾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폐기물을 줄이고, 송전탑을 줄이고, 축사를 줄이려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기업들과 대도시 주민들에게 부담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폐기물을 줄이고, 새로운 송전탑을 건설하지 않고, 축사도 줄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폐기물, 전기, 고기에 환경세같은 세금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 경각심도 갖게 되고, 줄이려는 노력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걷은 세금의 일부는 기존에 있는 폐기물매립장, 송전탑, 축사로 인해 주민들이 받는 고통을 줄이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폐기물, 송전탑, 축사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정책에도 세금을 써야 할 것이다.

이런 정책들이 채택되려면, 정치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농촌주민들의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역사를 보더라도, 식민지에서의 탈피는 결국 식민지 주민들의 각성과 연대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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