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 / 우리농업의 미래 (4)우리 농업의 기원 잡곡
■ 기획취재 / 우리농업의 미래 (4)우리 농업의 기원 잡곡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0.10.15 08:06
  • 호수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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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농업 혁명, 빙하기 끝난 후 잡곡에서 출발

종류 다양한 잡곡, 자손만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
▲구석기인들의 유적지 제천 점말동굴
▲구석기인들의 유적지 제천 점말동굴

농업 경작 시작하며 문명 쌓기 시작

진화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을 출발하여 유라시아 대륙으로 건너와서 각지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직립원인 단계부터였다. 호모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 단계에 이르러 더욱 활발한 이동이 이루어졌다. 20~30만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유라시아 대륙은 아열대성 기후여서 시베리아에서도 아열대성 식물이 울창해 맘모스와 같은 거대 초식동물이 살았다. 구석기인들은 매우 따뜻한 온도에서 살았으며 풍부한 식물의 열매를 채집하고 돌과 막대를 이용해 동물을 사냥하면서 먹고 살았다.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일대에서 발굴된 100만년 전~70만년 시기의 구석기인들의 유물과 유적은 50곳이 넘는다고 한다.

53000년 전의 유라시아 인류에게 빙하기라는 대재앙이 닥쳐왔다.28000년 전에서 13000년 전까지 빙하기의 절정이었는데 이 시기에 유라시아 대륙의 북위 40도 이북 지역은 긴 겨울에는 모두 얼어붙은 동토가 되어 생물이 살 수 없었다. 구석기인들은 40도 이남의 생존 가능한 따뜻한 지역으로 내려와 동굴을 찾아 살게 되었다.

인류가 대재난 시대인 빙하기를 극복하고 새 시대를 열기 시작한 것은 지구의 기후가 대체로 오늘날과 같아진 12000년 전부터였다고 한다. 이들은 동굴에서 나와 강번이나 해안에 움막을 짓고 새로운 도구인 마제석기와 토기, 골각기 등을 이용해 사냥, 어로, 식료 채집을 하면서 새로운 신석기 시대를 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신석기 시대가 모두 동일하게 12000년 전부터 시작된 것은 이러한 지구 기후환경에 똑같이 대응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 무렵 신석기인들은 농업경작을 시작해 최초의 문명을 쌓기 시작했다. 야생식물의 종자를 선택한 토지에 집중적으로 심어서 재배하고 그 생산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혁명적 변화였다.

▲제천시의 송학면의 한 수수밭
▲제천시의 송학면의 한 수수밭

석회암 동굴지역이 농업 발원지

동아시아 북위 40도 이남지역에서 구석기인들이 추위를 피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 가장 많은 지역은 한반도이다. 한반도 북위 40도 이남의 석회암 지대는 충청북도, 강원도, 경상북도 접경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일대에 가장 잘 발달해 있으며 무려 1000여개의 자연 동굴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 다음이 평안남도와 황해도 접경지대의 동굴지대이다.

이러한 석회암지대의 동굴에서 나온 신석기인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재배에 성공했다. 충북 청원군 금강 지류인 미호천 변 소로리에서 15000년 전의 탄화미가 출토됐으며 경기도 고양시 가와지 마을에서 출토된 볍씨는 5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5년 신석기시대 토기에 박힌 식물들의 압흔을 떼어내어 탄소 연대측정을 한 결과 8000년 전부터 조, 기장, , 들깨 등을 재배했음을 밝혀냈다. 농업혁명 초기부터 한반도에서는 단립벼+잡곡+의 식문화 유형이 자리잡은 것이다.
 

▲충북 제천시에 있는 의림지
▲충북 제천시에 있는 의림지

원주 신림농협, 잡곡축제 열기도

<뉴스처천> 취재팀이 지난 925일 한반도 농업의 발원지로 알려진 충북 제천 지역과 강원도 원주 지역을 방문해 우리 농업 기원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제천시 일대는 석회암 지대로서 구석기 유적인 점말동굴이 있으며 벼농사와 관련이 있는 의림지라는 저수지가 있다.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상주 공검지와 함께 우리 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저수지로 손꼽힌다. 제천의 지명도 의림지 제방에서 유래됐다. 제천시 시내를 벗어난 농촌에서 수수 등 각종 잡곡을 재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점말동굴이 있는 제천시 송학면 북쪽은 원주시 신림면이다. 이곳 또한 잡곡 생산지로 이름이 높은 곳이다.

원주시 신림면 농협에서는 우리 토종 종자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 , 수수 등 250여종의 토종종자를 수집하여 이를 널리 퍼뜨리는 일을 해왔다. 4500여평, 67종의 우리잡곡 전시포를 운영하며 종자 보존과 재배농가 확대에 힘써왔다.

원주 신림농협이 토종종자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3년도부터였다. 당시 서울에서 전국의 특산물이 참여하는 풍물장터가 열렸다. 여기에 신림 농협에서는 조 이삭 끝에 어른 수염처럼 털이 나있는 어른조를 출품했으나 색깔이 이상하다며 수입조라고 우기는 바람에 쫓겨나게 되었다. 우리 토종 종자임을 재차 확인한 후 우리 잡곡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맘을 먹게 되었고 전국을 돌며 토종 종자 수집에 나섰다.

이후 신림면 농협은 조합원들이 생산한 잡곡의 판로에 적극 나섰으며 매년 1010일 잡곡축제를 열기도 했다. 지금도 신림면 농협은 조합원들이 꾸준히 잡곡 농사를 짓고 있고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며 전국에 잡곡을 판매하고 있다.

▲원주시 신림농협 마트에 있는 잡곡 판매대
▲원주시 신림농협 마트에 있는 잡곡 판매대

·수수, 경작지 찾기도 어려워

2018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서천군에서는 380ha의 면적에서 콩, , 녹두 등의 잡곡류를 연간 680여톤을 생산하고 있다. 조나 수수는 경작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잡곡은 우리 몸의 원형질을 이루는 식품이다. 우리 땅, 기후에 맞는 수 천여 종의 우리 곡식 종자는 거칠은 할머니의 손끝에서 어머니에게로 물려내려 왔다. 우리 종자가 낳은 곡식은 식량으로서의 중요성에 더해 수많은 성분과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녀 생약으로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고, 오늘날에는 각종 식품의 원료로 소비되고 있으며 미래를 함께 할 자원이다.

더욱이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종자 유전자 확보에 나서고 있는 오늘 우리 종자는 자손만대에 물려줄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우리 종자는 국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으며 콩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의 콩 자급율은 10%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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