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불립불출不立不出 이겨내는 욕파불능欲罷不能 공부법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불립불출不立不出 이겨내는 욕파불능欲罷不能 공부법
  • 송우영
  • 승인 2020.10.15 08:43
  • 호수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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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면 사람의 도리를 알게 되고, 사람의 도리를 알면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고,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면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사람을 이해하면 비로소 인생의 방향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부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공부의 행간에서 찾아지는 인생의 지혜로 선외설선禪外說禪에 통용되는 말이다.

선외설선을 격외선이라고도 하는데 지해知解인 지식적 함량을 갖춘 잔꾀를 말하는 게 아니고 틀 밖格外의 대답으로 고준한 방외지교方外指敎의 가르침<攝習>인 셈이다. 조선시대의 선승 청허 휴정선사(서산대사)선가구감제불설궁 조사설현諸佛說弓 祖師說絃 원문의 주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젊은 시좌승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뭡니까.<원문직역하면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뭡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하니 조주선사가 답 뜰 앞의 잣나무라 했다. 이것을 격외선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다<僧問趙州 如何是祖師西來意 州答云 庭前柏樹子 此所謂 格外禪旨也>”

요즘 시각으로 보면 조금은 뜬금없는 가르침인데 유학에도 격외선의 공부법이 있다. 공자에서 비롯된다. 흔히 집 마당을 지나가는 아들을 불러 세워두고 가르쳤다는 뜻의 과정지훈過庭之訓으로 통용되는 논어 계씨편의 문장이 그것이다.

일찍이 아버지 공자께서 홀로 서 계실 때 내가 종종걸음을 하여 마당을 지나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를 배웠느냐고 하시기에 내가 답하기를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아뢰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 앞에서 말할 수 없다고 하시기에 나는 물러나와 시를 배웠습니다<상독립嘗獨立 리추이과정鯉趨而過庭 학시호學詩乎 대왈對曰미야未也 불학시不學詩 무이언無以言 리퇴이학시鯉退而學詩>. 다른 날에 또 홀로 서 계시기에 내가 집 마당 뜰을 달려가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를 배웠느냐. 하셔서 대답하기를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라고 아뢰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를 배우지 않으면 남 앞에 설 수가 없다하셔서 저는 물러나와 예를 배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듣고 배운 것은 이 두 가지입니다<타일他日 우독립又獨立 리추이과정鯉趨而過庭 학례호學禮乎아대왈 對曰 미야未也 불학례不學禮 무이립無以立 리퇴이학례鯉退而學禮 문사이자聞斯二者>”

공자의 이러한 가르침은 역자교지易子敎之가 불가할 때 사용되는 차선책의 가르침으로 군자원기자君子遠其子에 입각한 가르침으로 통한다. 아버지와 자식 간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가르침으로 자녀 교육에 성공한 인물들이 역사에는 수없이 많다. 기대승奇大升의 아버지 기진奇進은 공자의 이런 가르침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녀와 단 한 번도 겸상한 적이 없다 전하는데 그의 아들 기대승이 후일 대학자가 되어 아버지의 이런 가르침을 글로 적어 과정기훈過庭記訓이라는 제하의 책으로 엮어 후손에게 전했다 하고 연암 박지원은 남에게는 후한데 가정에서는 엄하기가 추상같아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서 함부로 숨도 크게 못 쉴 만큼 어려웠다 한다. 특히 그의 둘째 아들 박종채朴宗采는 이런 가르침을 일일이 적어 과정록過庭錄이라는 제하의 책을 지어 후손에게 전해 시대가 바뀐지 이미 한참이거늘 그럼에도 많은 후학들의 좋은 귀감이 되고있음은 주지적인 사실들이다.

이는 모두 공자가 아들 백어를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려는 아비의 마음을 본받고자 함이다. 자녀를 훌륭히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인들 다르랴마는 거기에는 반드시 뼈를 깍고 살을 도려내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욕파불능欲罷不能<논어자한편 안회와 공자의 대화>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세상사에서 거저 되는 것이 뭔들 하나라도 있을까마는 어찌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공짜를 바라랴. 인생이란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게 되어있고 공부한 만큼 살아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예습과 복습이 장난을 이기지 못하고<습불도농習不倒弄> 공부와 배움이 노는 것을 이기지 못하면<학불압희學不壓戲> 서지도 못하고 출사도 못한다.<불립불출不立不出> 설문해자를 쓴 동한의 저명한 경학가이자 문자학 학자인 허신許愼의 사불론四不論 경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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