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새외봉명塞外鳳鳴의 삼천三天 공부법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새외봉명塞外鳳鳴의 삼천三天 공부법
  • 송우영
  • 승인 2020.11.06 10:08
  • 호수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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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모국母國으로 임금의 나라이고 나라에서 중국전역에 각 지방에 작은 나라들을 세워 각 나라에 제후를 두어 지방 나라들을 다스리게 했는데 세월이 흘러 모국인 주나라보다 지방의 제후국들이 국력이 강성해지자 모국인 주나라 왕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나라 태사太史를 지낸 학자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9년조기록에 있다.

천자天子인 주나라 경왕景王이 진나라 평공平公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 꾸지람하는 말을 남기는데 때는 주나라 경왕12년 기원전 533년 추의 일이다. 모국인 주나라 왕은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큰아버지가 계심은<아재백부我在伯父> 마치 의복에다 갓이나 면류관을 갖춘 것과 같다.<유의복지유관면猶衣服之有冠冕> 나무와 물도 근원이 있듯이<목수지유본원木水之有本源> 백성에게도 근본인 지혜로운 임금이 있어야 한다.<민인지유모주民人之有謀主> 백부께서 만약 갓을 찢고 면류관을 부수고<백부약렬관훼면伯父若裂冠毁冕> 근본을 뽑고 근원을 막으며<발본색원拔本塞源> 오로지 나같은 지혜로운 임금을 버리신다면<전기모주專棄謀主> 비록 오랑캐일지라도 저들이 나를 어찌 보겠는가.<수융적기하유여일인雖戎狄其何有餘一人>”

쉽게 말해서 진나라 제후 평공은 족보 항렬로 따져볼 때 주나라 천자인 경왕의 백부뻘쯤 되는 제후로 나라가 강성해지자 오랑캐인 융적의 군대까지 거느리고 와서 자신을 진나라 제후로 임명해준 모국 천자의 나라 주나라로 쳐들어오는 천인공노할 짓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주나라 천자인 경왕은 자신의 백부뻘되는 진나라 제후 평공을 엄히 책하는 말이다.

여기서 유명한 발본색원拔本塞源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이쯤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경공이라는 이름이다. 이 임금은 영공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남을 위한 공부를 많이 한 임금으로 특히 백성들의 문제에 무척이나 천착했다는 임금이다. 그 누구도 내 땅에서 밥 굶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경공의 공부 목적이었던 셈이다. 세종대왕이 그토록 외쳤던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라는 식위민천食爲民天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경제육전經濟六典>

경왕의 스승은 방외도인으로 이름보다는 별호로 전하는데 변방의 새벽을 깨워 봉황을 가르친다는 별호를 지닌 새외봉명塞外鳳鳴이며, 그의 가르침은 삼천으로 민위식천民爲食天 인위학천人爲學天 군위치천君爲治天으로 압축되는데 은 일만 하는 사람으로 밥을 하늘로 삼으며, 은 벼슬하는 사람으로 공부를 하늘로 삼으며, 은 민과 인을 다스림을 하늘로 삼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은 공자가 논어에서 명확히 구분해 놨는데 민은 일하는 백성을 말하고 인은 그 백성을 관리하는 벼슬아치를 말하고 인 임금은 백성과 그 백성을 관리하는 벼슬하는 신하들을 모두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그 시대에는 일하는 사람과 공부하는 사람과 다스리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었다. 이것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인물들이 진나라 말기 때 오광과 진승이고 또 고려 때 최충헌의 노비였던 노예 만적<?~1198>이 그이며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몰후歿後 2년에 일어난 기축옥사己丑獄死때 사지가 찢겨죽은 미완의 사내 정여립鄭汝立<1546-1589>이 그다. 그들의 외침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으랴<공경장상公卿將相 녕유종호寧有種乎>였지만 이 문장이 주는 함의는 오직 하나 건곤일척乾坤一擲이다. 뜻은 한번 던져서 하늘이냐 땅이냐를 결정한다는 말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 제1 문장가 한유韓愈<768-824>홍구를 지나며過鴻溝라는 제하의 시에서 한 말이다.

고래로 남아로 태어난 자들에게는 숙명처럼 이고 갈 짐이 있는데 곧 공부다. 공부에는 세 개의 길이 있다. 첫째 공부를 많이 해서 벼슬을 사는 길. 둘째 공부를 많이 해서 나라를 세우는 길. 셋째 공부를 많이 해서 나라도 벼슬도 아닌 초야에 묻혀서 후학을 지도하여 그 후학들로 하여금 재상의 반열에 오르도록 가르치는 길이다. 무엇이 됐건 좌우간 시작은 공부에서임에는 변함없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남는 것은 공부가 유일이다. 명나라 왕양명王陽明전습록傳習錄을 쓰면서 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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