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살아가는 이야기
■ 모시장터 / 살아가는 이야기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20.11.16 11:20
  • 호수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집을 읽으며

 

 

석야 신웅순

 

옷고름 푼 자목련을

몰래 훔쳐본 죄

 

꼬리치는 개나리와

잠시 눈 맞은 죄

 

메마른 그대 가슴에

내 맘대로 불 지른 죄

임태진의 시집 때로는 나도 뜨거워지고 싶다의 시인의 말 죄값

 

나라도 그렇겠다. 옷고름을 풀었으니 훔쳐볼 수 밖에 없고, 꼬리를 쳤으니 눈 마주칠 수 밖에 없다. 그대 가슴이 메말랐으니 내 어찌 불 지르고 싶지 않겠는가.

미색을 보고도 미혹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영웅호걸, 도인선사도 미색에 빠져 허우적 대지를 않았는가. 그것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시인은 물론 자신의 시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받겠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대수랴. 우리는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다.

밤은 깊고 주위는 적막했다. 우수수 낙엽은 지고 있었다. 다시금 영창을 닫았다. 불을 껐다. 잠은 십리 밖으로 달아나고 정신은 자꾸만 맑아져갔다. 기다려도 진이는 오지 않았다. 서화담은 초연히 앉아 어둠 속에서 노래를 읊었다.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사제지간이었으나 도학 군자 서화담도 황진이를 이렇게 살뜰히도 그리워했다. 율곡 이이도 죽기 전에 사랑하는 유지에게 가슴 아픈 시유지사를 남겨놓지 않았는가. 윤리 도덕이 어디 사랑보다 더 중하다는 말이냐. 그것이 더 인간적일지도 모른다.

국경도 나이도 없는 것이 남녀지간의 사랑이라는 흔한 말도, 사랑 하면 예뻐지고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유행가 가사도 만고의 진리가 되었다. 그것이 인생이다.

진이는 이미 문 밖에 와 있었다. 노래를 들은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인들 낸들 어이하겠느냐는 진이의 절절한 노래이다.

 

내 언제 무신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닙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사랑이 행복이라면 사랑 또한 불행이기도 하다. 배반이 그렇고 이별이 또한 그렇다. 배반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만 하는 것이, 이별이라는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다. 백합꽃이 아름답기는 하나 시들면 얼마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가. 사랑이라는 섬뜩한 양날의 칼, 행불행과 미추이다. 뒤집으면 바로 천국행이요 지옥행이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인생의 이치이다. 누가 결혼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라는 명언을 이 땅에 남겨놓았는가. ‘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 시의 향기가 며칠 동안 내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가을도 깊었다. 나이 들어 시를 읽는 것도, 늦가을에 시를 읽는 것도 참 좋다. 오늘은 임태진 시를 읽었다. 눈 내리는 날 밤에 읽으면 더욱 좋을 듯 싶은 시이다.

기쁨은 언젠가 어디에선가 슬픔을 만나게 되고 슬픔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기쁨을 만나게 되어있다. 언제 만나는지 어디에서 만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디에서 만나는 가는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부슬비가 내리거나 부엉새가 울 때는 피했으면 좋겠다. 늘그막에 그런 쏘나타 같은 비바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나도 여기에 애로틱한 꼬리표 하나 달고 싶다. 인생은 선택이라는데 그래도 나는 사랑을 택하고 싶다. 나도 늙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람, 남자는 남자인가보다.

 

흙담 모퉁이에서

순이의 하얀 젖가슴

나밖에 본 사람이 없다

신웅순의 접시꽃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순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는지 지금 내 곁에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신만이 사연을 알 수 있고 순이만이 알 수 있는 이 신비로운 사랑을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선택하고 싶지 않겠는가.

아니. 그녀는 지금 어느 산녘을 돌아 가을비로 내게 오고 있는 것인가.

<석야 신웅순의 서재 매월헌>

시집을 읽으며

 

 

옷고름 푼 자목련을

몰래 훔쳐본 죄

 

꼬리치는 개나리와

잠시 눈 맞은 죄

 

메마른 그대 가슴에

내 맘대로 불 지른 죄

임태진의 시집 때로는 나도 뜨거워지고 싶다의 시인의 말 죄값

 

나라도 그렇겠다. 옷고름을 풀었으니 훔쳐볼 수 밖에 없고, 꼬리를 쳤으니 눈 마주칠 수 밖에 없다. 그대 가슴이 메말랐으니 내 어찌 불 지르고 싶지 않겠는가.

미색을 보고도 미혹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영웅호걸, 도인선사도 미색에 빠져 허우적 대지를 않았는가. 그것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시인은 물론 자신의 시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받겠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대수랴. 우리는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다.

밤은 깊고 주위는 적막했다. 우수수 낙엽은 지고 있었다. 다시금 영창을 닫았다. 불을 껐다. 잠은 십리 밖으로 달아나고 정신은 자꾸만 맑아져갔다. 기다려도 진이는 오지 않았다. 서화담은 초연히 앉아 어둠 속에서 노래를 읊었다.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사제지간이었으나 도학 군자 서화담도 황진이를 이렇게 살뜰히도 그리워했다. 율곡 이이도 죽기 전에 사랑하는 유지에게 가슴 아픈 시유지사를 남겨놓지 않았는가. 윤리 도덕이 어디 사랑보다 더 중하다는 말이냐. 그것이 더 인간적일지도 모른다.

국경도 나이도 없는 것이 남녀지간의 사랑이라는 흔한 말도, 사랑 하면 예뻐지고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유행가 가사도 만고의 진리가 되었다. 그것이 인생이다.

진이는 이미 문 밖에 와 있었다. 노래를 들은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인들 낸들 어이하겠느냐는 진이의 절절한 노래이다.

 

내 언제 무신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닙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사랑이 행복이라면 사랑 또한 불행이기도 하다. 배반이 그렇고 이별이 또한 그렇다. 배반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만 하는 것이, 이별이라는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다. 백합꽃이 아름답기는 하나 시들면 얼마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가. 사랑이라는 섬뜩한 양날의 칼, 행불행과 미추이다. 뒤집으면 바로 천국행이요 지옥행이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인생의 이치이다. 누가 결혼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라는 명언을 이 땅에 남겨놓았는가. ‘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 시의 향기가 며칠 동안 내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가을도 깊었다. 나이 들어 시를 읽는 것도, 늦가을에 시를 읽는 것도 참 좋다. 오늘은 임태진 시를 읽었다. 눈 내리는 날 밤에 읽으면 더욱 좋을 듯 싶은 시이다.

기쁨은 언젠가 어디에선가 슬픔을 만나게 되고 슬픔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기쁨을 만나게 되어있다. 언제 만나는지 어디에서 만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디에서 만나는 가는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부슬비가 내리거나 부엉새가 울 때는 피했으면 좋겠다. 늘그막에 그런 쏘나타 같은 비바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나도 여기에 애로틱한 꼬리표 하나 달고 싶다. 인생은 선택이라는데 그래도 나는 사랑을 택하고 싶다. 나도 늙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람, 남자는 남자인가보다.

 

흙담 모퉁이에서

순이의 하얀 젖가슴

나밖에 본 사람이 없다

신웅순의 접시꽃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순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는지 지금 내 곁에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신만이 사연을 알 수 있고 순이만이 알 수 있는 이 신비로운 사랑을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선택하고 싶지 않겠는가.

아니. 그녀는 지금 어느 산녘을 돌아 가을비로 내게 오고 있는 것인가.

<석야 신웅순의 서재 매월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