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 / 공부한 자는 무너지는 담장 아래 서지 않는다
■ 송우영의 고전 산책 / 공부한 자는 무너지는 담장 아래 서지 않는다
  • 송우영
  • 승인 2020.12.03 17:00
  • 호수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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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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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의 전략가 손빈孫臏은 기원전 382-316년 사람이다. 나라 아땅에 사는 그저 평범에 조금 못 미치는 그런 정도의 아이였다.

가계를 미루어 따진다면 손무孫武5대손이고 선대인 손무와 같이 손자孫子로 불린다. 그가 쓴 불후의 명저를 후대의 강호는 손빈병법孫臏兵法이라 불렀다. 2차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라 불리는 독일의 롬멜장군은 손빈이 쓴 손빈병서를 아트오브워’(전쟁의 예술)라 명명했다. 전쟁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는 말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치 빼어난 인물이 된 손빈은 공부에 관해서는 무조건 어려서 해야 한다는 사람이다. 그가 했다는 유명하지만 세간엔 잘 아려진 바 없는 대구對句 중의 하나가 어려서 하는 공부는<해제지동학孩提之童學> 모든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개전무저강皆戰無低强> 라는 말이다.

그렇다. 공부는 무조건 어려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제나라 회음후 한신 대장군이 그의 딸을 가르치면서 맹자의 예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손빈 그가 병가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1부터 100까지 있는데 세 개의 이유를 든다. 첫째는 그는 어려서 똑똑치 못했고 되려 아둔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는 스승을 잘 만났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으며 그것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그가 딸에게 가르쳤다는 맹자의 문장은 이렇다. 맹자孟子6편 고자장구하告子章句下15문장인데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이 장차 누군가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는<천장강 대임 어시인야天將降大任於是人也>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필선고기심지必先苦其心志>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노기근골勞其筋骨>, 몸의 뼈와 살을 가죽만 남는 지경에 이르게 하며<아기체부餓其體膚>, 그 살림살이를 몹시도 궁하고 핍절하게 하여<궁핍기신窮乏其身> 그 하고자 하는 일마다 어지럽고 힘들게 하나니<행불란기소위行拂亂其所爲> 이는 그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을 하여<소이동심인성所人心忍性>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이룰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증익기소불능增益其所不能>”

결국 손빈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병가兵家의 독보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가 모성謀聖<전략전술의 최고경지에 이른 성인> 귀곡자鬼谷子를 찾아가 공부했다는 나이는 불과 7세라 전한다.<어떤 이본에는 13세 전후라고도 함>

회음후 한신은 손빈의 예를 들어 말을 한다. 전쟁 최후의 승자는 전쟁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 전에 어린 시절 공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려서 공부를 많이 한 이가 훗날 어른이 되어 때를 만나면 인생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손빈을 모델로 해서 공부한 이가 조선의 장자방이라 불리는 삼봉 정도전이다. 그는 포은 정몽주 이런 류의 가계와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고개도 함부로 들 수 없는 미천한 집안의 출신이다. 그런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뿐이었다. 공부하는 길. 공부를 비껴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공부는 누가 해야하는가. 다른 그 무엇,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재주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 다른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그는 다른 것을 해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여기서 어린 삼봉 정도전이 선택한 것은 공부다. 그 교재로 맹자를 들었다. 그리고 출사하여 이인임과의 싸움에서 패해 10년의 귀양살이에서 터득한 인생의 지혜를 농부에게 답하다<답전보答田父>’라는 글에서 고백한다.

힘이 부족한 것도 헤아리지 못한 채<부량기력지부족不量其力之不足> 큰소리만 쳤으며<이호대언而好大言> 지금이 어떤 때인지 모르고 <부지기시불가不知其時之不可> 함부로 바른 말 하다가 절딴났으며<이호직언而好直言> 요즘 세상에 옛날 방식만 찾다가<생호금이모호고生乎今而慕乎古> 밑바닥에 살면서 윗사람을 들이받기만 좋아했느니<처호하이불호상處乎下而拂乎上> 상황이 이러하거늘 벌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차기득죄지유여此豈得罪之由歟>”

공부한 자는 결코 무너지는 담장 아래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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