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흐르는 물은 멈추지 않는다(천류불식川流不息)
■ 송우영의 고전산책 / 흐르는 물은 멈추지 않는다(천류불식川流不息)
  • 송우영
  • 승인 2020.12.16 21:50
  • 호수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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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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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에 임해서는 구차하게 얻지 말며<임재무구득臨財毋苟得>, 어려움에 임해서는 구차하게 면하려 하지 말며<임난무구면臨難無苟免> 다툼에는 이기려고만 하지 말며<한무구승狠毋求勝>, 나눌 때는 많이 가지려만 하지 말 것이다.<분무구다分毋求多>”

명심보감明心寶鑑 순명편順命篇10 문장의 이 말은 예기禮記 곡례왈曲禮曰이 그 출전으로 소학小學 3 경신敬身편에 나오는 문장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공부를 유여력학由餘力學이라하여 그럼에도 힘이 남으면 하는 공부라는 행유여력行有餘力 즉이학문則以學文이다.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그런 연후에도 힘이 남는다면 그때는 공부해도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공부한 사람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할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知不己知>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할까를 걱정한다고 한다.<환불지인야患不之人也> 쉽게 말해서 공부란 부모에게 효도를 다한 후 형제를 공경하며 그러고 나서도 힘이 남는다면 그때는 나를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는 도구요 통로요 매개체로 활용해도 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공부란 선인들의 행적을 읽어내는 행위이며 공부는 그런 행적을 읽어냄으로 인해서 나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것이다. 대학책에서는 이를 수신이라 했다. 문자 그대로 닦을수에 몸신으로 몸을 닦는다는 말이다.

공부하지 않는 인생을 일러 남이 내 등에 밭을 갈아엎는다는 말을 한다. 곧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엎어 기나긴 고랑을 지었다라는 탈무드의 격언이 그것이다. 이 말의 출전은 유대교 구약성서 시편 129편으로 흙먼지 취급하며 무시당하는 처지를 경험한 시편 기자의 분을 말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 등에 밭을 가는 것은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큰 고통이고 아픔이겠는가. 여기에 대한 탈출구로 고통을 당해본 저들의 선택은 공부인 것이다.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이라 했다. 서두르면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남자가 공부함에 있어서<남아재학男兒在學> 그 첫째는 뜻을 세움이요<기일즉지其一則志>, 그 둘째는 세운 뜻을 위해 열심히 함이요<기이즉매其二則邁>, 그 셋째는 주변 것을 끊음이요<기삼즉절其三則折>, 그 넷째는 묵묵히 앉아서 몰입이다.<기사즉몰其四則沒> 맹자孟子는 맹자 진심盡心장에서 공부하는 법을 일러 낮은 데에서부터 공부를 차곡차곡 쌓아와야 한다고 했고, 이보다 앞선 시대 맹자의 사조이신 자사는 중용15장에서 먼 곳을 가려 할 때 반드시 가까운 데에서부터 출발하고<비여행원필자이辟如行遠必自邇>, 높은 데를 오르려 할 때 반드시 낮은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다<비여등고필자비辟如登高必自卑>고 말한바 있다. 천리지행千里之行 시우족하始于足下라는 말이다. 천리의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다.

송덕봉의 남편 미암 유희춘의 말에 불급불휴不急不休라는게 있다. 서두르지 않으며 그렇다고 쉬지도 않는다는 말인데 천자문장구에 나오는 냇물은 흘러 쉬지 않는다는 천류불식川流不息에서 따온 말이다. 공부하는 선비들에게는 마음을 다잡는 좌우서가 한둘쯤 있기 마련인데 천류불식도 이와 같다. 산속 작은 물줄기가 쉼 없이 흘러 큰물을 만나고 큰물이 더 흘러 바다를 만남과 같이 공부라는 것은 쉼도 없이<불휴不休>, 그렇다고 멈춤도 없이<부지不止>, 지침도 없이<불폐不敝>, 더욱 더욱 열심히 열심히 한다<가가승승加加昇昇>는 것이다.

이렇게 서두르지 않고 길고 깊게 공부한 인물이 남들은 일생에 한 번도 할까말까한다는 영의정을 세 번씩이나 지낸 권철이요 그의 넷째 아들 권율이다. 역사에는 장군으로 더 알려져있는 인물로 문과 무를 두루 갖췄으나 출발은 문관으로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등과한 인물이다. 그의 나이 45세 되던 1582년 선조15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을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의 도드라지지도 않은 평이한 공부법이다. 권율은 당대 진명사해를 꿈꾼 인물이 아니었고 후대에서 진명사해가 나올 것을 준비한 인물이다. 이것이 그가 과거시험을 늦깎이로 등과한 이유이기도 하다. 등과하는 청운의 꿈이 아닌 공부는 많이 하되 벼슬하지 않는 백운의 꿈을 꿨던 사내. 당대 진명사盡名四海해든 후대 진명사해든 그 시작은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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