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 칼럼 / 주민자치회 설치 근거 거부한 국회
■ 하승수 칼럼 / 주민자치회 설치 근거 거부한 국회
  • 하승수(변호사, 녹색전환연구소 이사)
  • 승인 2020.12.24 0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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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변호사. 녹색전환연구소 이사)
하승수(변호사. 녹색전환연구소 이사)

2021년은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615.16. 군사쿠데타로 지방자치가 정지되었다가 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치르면서 지방자치가 부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맞는 마음은 매우 착잡하다. 1991년 지방자치 부활당시에 걸었던 기대가 실망으로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모범적인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친환경무상급식, 청년배당, 농민수당, 주민참여예산제, 정보공개 확대, 에너지 전환 등등 최근까지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정책들은 지방자치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모범적인 사례들이 있다고 해서, 지방자치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방자치를 하는데도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지방자치의 본질은 주민자치이고 풀뿌리민주주의라고 한다. 주민들이 참여해서 지역의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근본취지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이런 정신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을까? 지방자치단체의 일은 커녕, 마을의 사안을 결정하는 데에도 주민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5.16 군사쿠데타 이전의 지방자치는 그나마 지방자치의 본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1961년 이전에는 농촌지역의 경우에 읍면 단위로 자치를 했다. 읍장, 면장을 주민직선으로 선출했다. 읍의회, 면의회를 주민직선으로 구성했다. 지금 생각하면 낯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읍면 정도의 단위로 지방자치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미국, 유럽, 일본이 모두 농촌지역에서는 읍면 정도의 단위로 자치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5.16 이전에는 그렇게 했다. 지금처럼 군()단위로 농촌지역의 지방자치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상한 것이다.

또한 5.16. 이전에는 서울시의 경우에 동장 직선제를 시행했었다. 동장도 주민들이 직접 선거로 뽑았던 것이다. 지금도 인상적인 모습이,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기가 사는 지역의 동장을 뽑기 위해 투표소에 나온 모습이다. 이렇게 동장 직선제를 시행한 이유는 그만큼 풀뿌리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로 30년 동안 지방자치가 정지되었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할 때에 읍동에는 자치개념을 적용하지 않고, 동을 단순한 하부행정조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읍동장 주민선출(추천)제같은 방식을 시도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너무 미미한 수준이다. 동별로 주민자치위원회를 거쳐 주민자치회까지 만들고 있지만, 법률적 근거도 없는 실정이다. 예전처럼 읍동장을 직선으로 뽑지는 못하더라도, 주민자치회가 법률적 지위라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방자치법을 개정하게 되면, 동 단위로 주민자치회를 구성하는 근거라도 마련하자는 논의가 계속 있어 왔다. 그리고 정부가 만든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에도 그 부분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지난 129일 국회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주민자치회의 설치근거 조항을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의 자치강화를 위해, 지금 전국적으로 시범 실시되고 있는 주민자치회의 설치 근거를 마련하자는 제안마저도 국회에서 거부된 것이다.

이처럼 정치권에 깔려 있는 중앙집권세력은 지방자치의 본래 취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 지금 당장 읍동 단위에서 선거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동 단위에서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주민자치회에 대한 법률적 근거라도 마련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지금의 주민자치회 자체는 여러 가지로 미흡한 점이 많지만, 법률적 근거라도 마련하면 차차 개선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 것을 보면, 지금의 국회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지방자치 부활 30년이 지났지만,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지금의 지방자치 수준은 1950년대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 모든 것은 정치의 탓이다. 지방자치 부활 3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진정한 주민자치 실현을 위해 전국의 모든 풀뿌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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