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아이들이 웃는 세상, ‘아이엠 샘’
■ 모시장터 / 아이들이 웃는 세상, ‘아이엠 샘’
  • 김윤수 칼럼위원
  • 승인 2021.01.27 16:22
  • 호수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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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칼럼위원
김윤수 칼럼위원

2021118, 숨진 친부와 8살 딸의 영정이 나란히 놓인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친모의 손에 의해 호흡이 막혀 숨졌고, 아이의 친부는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두 시간 뒤에 아이를 혼자 보낼 수 없다는 메모를 남기고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8년 전 친모는 이혼을 하지 않은 채 아이의 친부와 사실혼 관계를 가졌고 아이가 탄생하였다. 문제는 친부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 했으나 친모가 계속 반대를 하였고 갈등은 8년 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그 피해는 아이가 고스란히 받았을 터이고, 친부와 친모의 별거에 이어 아이는 끝내 친모의 손에 죽고 말았다. 비정한 친모의 극단적 이기심과 잘못된 판단은 친부와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부녀는 죽어서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었다.

친부는 아이를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 아이도 친부와 친모를 사랑한다고 그림과 글씨를 남겼다. 친모가 원하지 않은 아이를 낳게 되었더라도 아이를 사랑하는 친부가 있었으니 친부가 육아를 맡아서 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아이엠 샘이라는 영화가 있다. 7살 지능의 샘은 자신의 딸을 낳자마자 도망친 생모를 대신해 이웃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혼자 육아를 해나간다. 딸이 자라면서 부녀지간은 그저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나 딸이 7살이 되자 더 이상 딸의 양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기관에서는 강제로 부녀지간을 떼어놓고 입양을 시켜버린다.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샘은 딸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 딸은 입양이 되었고, 딸을 보기 위해 입양한 집 근처에 집을 얻어 딸을 곁에서 지켜보던 샘에게 감동한 입양자는 딸을 샘에게 돌려보내기로 한다. 지적 장애인이라고 사랑이 없고 양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은 편견이다. 샘은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고 양육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샘의 절절하고도 가슴 아픈 장면은 법의 문제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가족관계등록법상 미혼모는 원하면 바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지만 미혼부는 쉽지가 않다고 한다. 아이의 친부는 혼자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주민센터 등에 문의했지만 친모가 수개월 연락이 되지 않아야 친부 혼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미혼부 법률 지원을 하는 정훈태 변호사는 미혼부는 원칙적으로 출생신고 권한이 없고, 예외적으로도 친모를 모르는 상태에서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웃기지 아니한가. 친부가 확실한데도 친부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니, 친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친모를 몰라야 가능하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법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이런 연유로 인한 무연고자 상태의 아이들, 학교도 못 가고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이 없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선진국 운운하는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아내 또한 남편의 소유가 아니다. 폭력 가정에서 매 맞는 아이와 아내는 자신의 소유라고 착각하는 가장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인격체이자 독립체인 개인의 소중한 생명은 누구도 함부로 빼앗을 수 없으며 폭력도 안 된다. 정부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권장할 것이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는 불행한 아이들,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안전장치부터 내놓아야 한다. 특히 법을 만드는 국회는 보호가 필요한 어린 약자에 대한 보호망을 구축하기 위한 법 개정과 제도 및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조속하게 실행하여야 하며 국민을 대신해 일을 하는 여타의 정치인들도 선공후사하는 마음과 의무감으로 개인의 생명의 존엄함 정도는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힘써주시기를 바란다.

최근 접하는 뉴스에는 힘없는 아이들이 돌봄을 못 받고, 부모에 의해 학대받고 죽어나가는 사건들이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힘든 가운데 아이들마저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세상이라니 그저 우울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질 때 희망 있는 사회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건을 보도한 인터넷 뉴스의 많은 댓글 중 하나를 인용해 본다. “유전자검사로 친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세상에 왜 친부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건가요? 이 문제로 무연고인 아이들 기사 뉴스를 본 게 셀 수가 없는데 국회는 대체 뭐하나요? 코로나 전부터 이거 문제였잖아요! 태어난 애기들 좀 챙기라고요. 아동학대. 출생신고 이건 기본 아니냐고욧.”

김윤수 칼럼위원은 오랫동안 교직(고등학교 교사)에 몸담았으며 현재 시초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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