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아버지의 의무와 자식의 도리 사이의 공통점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아버지의 의무와 자식의 도리 사이의 공통점
  • 송우영
  • 승인 2021.03.03 16:54
  • 호수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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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둔어총勝鈍於聰이란 말이 있다. 둔함이 총명함을 이긴다는 말이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총명하기도 어렵거니와 둔하기도 또한 어렵다.<인생사세人生斯世 총명난호도역난聰明難糊塗亦難> 둔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수불석권手不釋卷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수불석권이라 하면 오나라 맹장 여몽을 비껴갈 수 없다.

그는 열 살 때부터 전장의 심부름꾼으로 밥벌이를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면서 듣고 보고 배운 것이라곤 살아남기 위한 길은 칼싸움 질 뿐. 그렇게 혼신을 다해 무예를 익힌 그는 오나라 군주의 눈에 들어 어린 나이 임에도 장군이 됐다. 문제는 글을 몰랐다.

재상 노숙의 권유로 공부를 시작했고 공부를 얼마나 치열하게 했던지 사흘마다 사람들이 눈을 비비고 봐야할 만큼 공부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길 여몽을 보려면 눈을 비비고 다시봐야 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고사이다.

여몽은 손에서 책놓기를 쉽게 하는 죄를 범치 않은 인물이다. 여몽이 가장 즐겨 읽었다는 책이 몇 권쯤 되는데 그중 한 책은 무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중에서 대학 이라 한다. 장군으로 절실한 책은 사마휘 수경선생의 비급병서라든가 아니면 무경칠서를 비롯한 오기병서 손자병법 정도가 주를 이룰 터인데 하필 왜 인문학의 출발이라는 대학일까. 물론 당시에는 인문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다.

본래 대학이라는 책은 인간 정서의 근간을 흔들어 뼈대를 세우는 철골鐵骨 작업이라 했다. 그래서 대학 책은 한 번 읽으면 자신을 알게 되며<초독지신初讀知身>, 두 번 읽으면 가정을 가지런히 하며<재독재가再讀齊家>, 세 번 읽으면 나라를 다스린다<첩독치국疊讀治國>는 책이다. 대학 책의 분량은 수진본<옷 소매에 넣고 다닐 정도의 작은 분량>으로 봐도 될 만큼 글자수라야 고작 1700여자 남짓. 그러나 그 해설서가 무려 대학강어 대학혹문 대학지남을 포함 5권을 넘을 만치 어마어마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7-8세 때 소학 책을 읽고 9세가 되면 읽는 책이 대학 책이다. 9세라 함은 격몽擊夢의 시기가 끝난 때이다. 더 이상 야단맞거나 회초리 맞아가면서 공부할 나이가 아니란 말이다. 율곡 이이가 42세 때 해주海州 석담石潭에서 잠시 훈도로 머물면서 초학자들의 학문하는 방향을 일러주기 위해 쓴 책이 <격몽요결>이다.

격몽擊蒙이란 말은 주역周易 몽괘夢卦 상구上九 효사爻辭의 말로 몽매하여 총기가 모자라는 어린아이를 회초리로 때려서라도 똑똑한 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으리라. 누군가의 자녀를 야단친다는 것이 위험한 시대에 회초리로 때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랴마는 그 시대에는 그렇게라도 해서 바른 사람 구실 하도록 가르쳤던 때도 있었다.

공부라는 것은 똑똑하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니다.<총자미필능우학聰者未必能尤學> 그렇다고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누구나 똑똑한 것도 아니다.<수수미필능우총秀修未必能尤聰> 똑똑하다는 것은 어려서는 공부를 열심히 함이요 <총즉해제동숙학聰則孩提童熟學> 어른이 되어서는 가정을 부족함 없이 잘 건사함이요.<처자권속불부족妻子眷屬不不足> 나아가서는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똑똑하다 하는 것이다.<진득천하위총야進得天下謂總也>

반면에 공부를 안한다는 것은<불학자不學者> 어리석은 게 아니면 속이는 것이다.<비우즉무非愚則誣>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 인류사에 최고의 개혁가로 꼽은 왕안석은 유교儒敎 도교道敎 불교佛敎에 정통한 거물 중 거물이요 대학자 중에 대 대학자이다. 그런 그가 치국治國 만큼이나 공들인 일이 단 하나 있는데 자녀교육이다. 자식의 공부가 아비보다 짧으면 가문은 망한다. 가 그의 지론이요 존재 이유이다.

자식 공부에 관한 일이라면 구걸하는 걸인에게도 머리 숙일 수 있다는 게 그의 변이다. 이 열정에 감동해서 받아준 인물이 이정자二程子 선생 정이程頤 정호程顥이다. 17세에 더 이상 배울게 없어서 통곡했다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의무와 자식의 도리 사이의 공통점은 공부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훌륭한 스승을 찾아줘야 하고 자녀는 그 보답으로 공부 많이 해서 아버지의 뜻에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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