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코로나 시대, 서천의 관광지 ❶마량리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관
■ 기획 / 코로나 시대, 서천의 관광지 ❶마량리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관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1.03.10 17:12
  • 호수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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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관광객 줄었어도 가족단위 나들이 꾸준하다

마량리 성경전래지기념관, 비기독교인들도 찾아가는 역사의 현장
▲서면 마량리 137번지에 있는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관
▲서면 마량리 137번지에 있는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관

세계적 감염병 확산으로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서천군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에도 한산모시문화제가 비대면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해마다 봄맞이 행사로 열리던 동백꽃 주꾸미축제는 올해에도 취소되었다. 이로 인해 서천군 경제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가족단위의 나들이나 몇몇 지인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생태관광자원이 풍부한 서천군의 가족단위 나들이 코스로 적당한 여행지를 소개한다.<편집자>

 

▲마량진에 나타난 영국군 장교를 맞이하는 비인현감 이승일
▲마량진에 나타난 영국군 장교를 맞이하는 비인현감 이승열

봄내음이 물씬 풍기기 시작한 지난 6일 비인 성내4거리에서 서면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승용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홍원항이나 마량항을 찾는 관광객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들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한국최초성경전래지기념관이다. 마량항 한 켠에는 1816년 이곳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지만 이를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기념관이 바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곳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최초성경전래지기념관 관장인 이병무 목사를 만나보았다.

마량항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이곳 기념관을 들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단체로 기념관을 찾은 후 인근 관광지를 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인면 마량리에는 마량진(馬梁鎭)이란 수군부대가 있었다. 순조 때인 181695일 갈곶(葛串)이란 곳에(현재의 칠구지) 바실홀이란 27살의 젊은이가 이끄는 영국 군함 라이러호가 나타났다.

▲3층에 있는 카페. 마량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3층에 있는 카페. 마량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갑작스런 이양선과 코쟁이들의 출현으로 마을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당시에는 외국인과의 교류가 엄격히 금지된 시기였기 때문에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비인 현감 이승렬은 매우 당황하였으나 용감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큰 충돌없이 며칠 만에 영국군함은 물러갔다.

영국장교 바실홀은 마량리 주민들과의 접촉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을 남겨 약 200년 전 비인면 마량리에서 있었던 동서문화의 교류와 우리 선조들의 삶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량진 첨사 조대복은 우리의 눈길을 끌만 하다. 그는 함장을 만나 직접 담판하기 위해 배에 올라갔으나 좁은 배 안에서 그의 머리에 쓴 갓이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그는 조선 관리의 상징인 갓을 끝까지 벗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그는 당당하게 배 안을 구석구석 조사했는데 닫혀 있거나 묶여 있는 것은 모두 열거나 풀라고 요구하여 검사하고 서기에게 모든 것을 기록하게 했다. 이 조선의 관리는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던 것이다.

▲4층 세미나실에서 바라본 마량항. 전면의 십자가가 유리창에 비친 모습
▲4층 세미나실에서 바라본 마량항. 전면의 십자가가 유리창에 비친 모습

 

바실홀은 그의 회고록에서 조대복에 대해 외국의 풍속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넉넉한 마음씨는 정말로 경탄할 만했다. 그의 예의바름은 높은 지위뿐만 아니라 조선사회의 문명의 척도를 나타내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보면서 나라가 다르고 사회가 달라도 정중함의 형태가 모두 닮았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라고 칭찬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곳을 방문해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다.

이때 이들이 주고간 것이 성경책으로 알려졌다. 성경전래 200주년이 되던 201695일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개관후 4개월간 서천군이 직접 운영했으나 이듬해부터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관사업회(서천군기독교연합회)에서 수탁을 받아 201711일부터 현재까지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관리·운영해오고 있다.

기념관의 운영은 매주 수요일만 휴관하며 9시 개관해 오후 6시에 폐관을 한다. 지하1층에 주차장이 있고 1, 2층은 전시실, 3층은 카페, 4층은 세미나실로 되어있다.

개관하고 첫해를 지나 두 번째 해부터는 방문자 연인원이 53000명을 넘어 5월이나 10월에는 하루 방문자가 1000여명에 이르는 날이 많았다 한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하루에 1700여명 다녀간 날이 있었습니다. 저까지 포함해 5명이 일하는데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병무 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 운영을 맡았을 때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막막했습니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 가장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기념관이 좋게 소문날까 어떻게하면 기념관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며 어떻게 하면 찾아오는 방문자들의 마음속에 우리의 고장 서천을 예쁘게 각인 시키며 어떻게 하면 방문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해설을 통해 저들의 마음을 통하게 해 다시 찾아오고 또한 돌아가서는 기념관을 적극 홍보하는 자로 만들 수 있을까였습니다. 하루 하루가 무지 고단했으나 보람이 있었고 즐겁고 행복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해 코로나 감염병 사태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 수도 대폭 줄었다. 지난해 8500명이 다녀갔다. 예전의 1/7 수준이다.

어떤 분들은 기념관에 뭐 할 일이 있기에 5명씩이나 있는거냐고 의아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질좋은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인원입니다. 사실 관내의 유사기관의 3명 인건비 총액보다도 우리 기념관 직원의 5명 인건비 총액이 적습니다.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공휴일 휴가사용도 자제하며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인건비 20%를 자진 삭감했다고 한다. 이런 어려운 형편을 알고 서천의 뜻있는 몇분이 성금을 맡기기도 했다 한다.

▲마을 청소에 나선 기념관 직원들
▲마을 청소에 나선 기념관 직원들

이곳을 찾아오는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관람을 마치면 식당이나 다른 관광지를 찾는다. 이병무 관장은 이들이 서천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어느 분야에서든지 정성껏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마량리에는 2013년에 건립된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이 있다. 1902년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는 성경 번역을 위해 배를 타고 제물포에서 목포로 향하던 중 어청도 인근에서 선박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에는 우리나라 개신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각종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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